한줄 詩

녹슬지 않는 잠 - 김경성

마루안 2018. 8. 29. 22:04

 

 

녹슬지 않는 잠 - 김경성


방문이 내려앉았다
늙은 경첩을 물고 있는 못의 자리가 깊다
나무젓가락 분질러서 밀어 넣고 망치질을 했다
풀어진 문틀, 바람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틈으로 새 못을 밀어 넣었다
언젠가 다시 벌어질 틈을 위하여
나무문을 세우는 못은 나사못이어야 한다고
나무의 결을 하나하나 읽으며 천천히 들어가서
못의 방을 만들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들이치는 바람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나이테에 새겨진 시간을 물고 있는
나사못의 틈으로 들어가는 바람이여
나무의 틈을 드나드는 그대여
틈과 틈 사이에 함께 정박해 있었구나
젖은 마음을 읽으며
나이테의 행간 속에 드는 못의 잠은 깊다
그대 가슴 안에 파놓은 못(池) 속에 드는 잠도 깊다
너무 깊어서 녹슬지 않는 잠이다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문학의전당

 

 

 

 

 

 

암연의 시간 - 김경성


나의 전생은 청동빛 너울을 걸친 다리였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건너서
물의 사리가 쌓이는 재인폭포로 들어갔다

절벽에서 살아가는 돌단풍은
첫서리가 내리도록 오지 않았고
누군가 쌓아올린 돌탑은 공룡 알처럼 부화하지 못하고
물속에서 화석이 되어갔다
길의 끝을 붙잡고 있던 내 몸에서는
씨방도 없는 녹물 꽃들이 피어났다
내 속을 훑고 가는 것들은 모두 강으로 흘러갔다

어느 가을
길을 잃은 한 사람이 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되돌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여우의 귀와 낙타의 눈을 그려놓고
사막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이미 사라진 지 오래전이라는 말은 하지 말자
내 속에 나는 없고 온통 오래 머무는 것들만 가득하다
푸른 터번을 두른 사람이
내 안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시인의 말

 

깨지지 않는

뜯어지지 않는 고요를 둘둘 말아서 입천장에 붙이고

혀로 꾹 눌러놓는다

 

마음은 시침처럼 느리게

몸은 분침처럼 조금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