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 별자리 - 육근상

마루안 2018. 8. 21. 22:56

 

 

가을 별자리 - 육근상



단풍나무는 벌겋게 취해 흥청거리고
손가락 닮은 이파리들이 오를 대로 올라
색(色)기 부리고 있네

살짝 일렁이는 물바람에
목젖 다 드러내며 자지러지는 딸아이
봉숭아빛 입술 뜨거워지고 종아리 굵어졌으니
품에서 내려놓아야 할 때

겨울나려면 좀 더 비워둬야지
노을빛 눈부시게 부서지며 낡은 흙집 감싸 쥐면
뜨겁던 여름도 까맣게 익은 산초 씨로 떨어지는가

돌아가리라
삭정이 같은 노모 시래깃국 끓이고
삶이 무성했던 아버지도 허리 굽어
텃밭에 쌓인 고춧대 태우며 붉어지고 있을 것이니
돌아가 북창 열고 가을 별자리 하나 마련하여
안부 들어보리라

 

*시집, 절창, 솔출판사

 

 

 

 

 

 

꾼 - 육근상

 

 

스무이틀이 내 생일인디 마늘밭이며 고추밭이

온통 흙 바가지 뒤집어쓰고 뱃바닥 긁어대는 염천 더윈디

 

창수란 놈

막걸리 한 통 사 들고 찾아왔것다

 

대청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저저, 배배 돌아가는 몸뚱어리에 차림새 하고는)

세모시 두루마기 걷어 올려붙이고서리

한 소리 되아 내는디, 되아 내는디

 

갓은 뒷꼭지가 달라붙고, 속적삼은 밖으로 두루마기까지 땀범벅이 되어 있고,

목구녁은 턱턱 막혀 소리가 나오질 않고, 꼬박 이틀간 되아 내다 기진하고 맥진하여

지리산 푸른 학이나 될란다 숨어들어 갔는디, 여태껏 소식 깜깜한

 

 

 

 

# 육근상 시인은 1960년 대전 출생으로 1991년 <삶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삶의 주변에 떠도는 상처와 결핍, 그리고 희망을 쓰다듬는 시를 쓰고 있다. <절창>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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