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앨리스 - 김사이
찬밥 남은 밥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먹는다
내 밥 구하려고 남의 밥을 하러 와서
쉴 틈 없이 밥을 해도 내 밥은 불안정한데
나는 언제 사장의 가족이 되었을까
이모 띵동 엄마 띵동 아줌마 띵동 여기요 저기요 띵동
일용직 아줌마나 돈 벌러 온 이주민 아가씨나
어이 띵동 여보 띵동 미스 김 띵동 야 띵동
시간을 떠도는 대기번호
허공에 떠 있는 가족
삶이 근육통에 관절통으로
삐거덕거리고 절룩거린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왜 아파야 하는지
이브가 여자로 기록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되었는지 몰라
여자의 노동은 속절없이 떠도는 뜬구름 같은 사랑일지라도
사랑 없는 섹스 같은 앨리스의 노동
아버지나라에서 찬밥 남은 밥처럼
먹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먹는
성실한 날들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비
균열 - 김사이
소소한 바람은 무심하게 흘러가다
바람에 따라 폭풍으로 몰아치기도 하는데
가리봉동에서 여자씨의 죽음은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주먹다짐처럼 스쳐가고
원곡동에서 여자씨의 죽음은
이주민끼리의 치정이나 원한쯤으로 치부되고
텔레비전으로 인터넷으로 본다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며 본다
오늘의 날씨처럼 일상적인 바람이 분다
수백 수천의 월세를 내면서도 가지고 싶은
그 이름의 욕망
강남에서 바람이 불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바람에 불이 붙었다
스쳐가고 치부되던 여자씨들
강남에서 활활 타올라
조울증 걸린 세상으로 목소리를 낸다
유색과 백색의 거리이기도 하고
히잡 쓴 여자와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의 거리이기도 한
가리봉동과 강남의 거리는
내 밖과 내 안의 거리다
*시인의 말
시가 여전히 길다
덜 성숙하니
일상에서 내 말보다 시가 더 길다
아직 할 말이 많은가보다
아직 반성할 기회가 있는 것이겠다
아직 길은 있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아직 산다
여전히 나는 네가 좋다
음정 박자 어설픈 내 옆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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