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죄를 짓다 - 이돈형

마루안 2019. 6. 26. 22:21

 

 

죄를 짓다 - 이돈형


소매를 잡아당기면
마징가제트의 큰 입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는 중저음의 노래야
자전하고 있는 수인번호가 모여드는 공터야

고백을 할 때마다 죄는 쉬워졌다
우리 모두는 죄를 빼고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보일 듯 사라지는 입 모양을 따라 변신한다는 것은 케케묵은 마술 같았다

손을 씻어야지

누군가 뱉어놓은 침에서 무작정 환청이 들려왔지만
죄는 죄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사함을 내밀면
비눗방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의 울타리를 넘어갈 수 있을까
마징가제트의 큰 입속으로 들어가면 사라지는 사방들과 사라지는 죄의 잔해들
손을 씻어야겠지

죄를 보여주면 여죄는 투명해질까
망루 위에서 손을 흔들어도 버릇처럼 연기들은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불러낼 수 없는 24시 편의점 앞에서 죄짓는 일에는 겨를이 없어

손을 씻는다고 해도
먼저 죄를 선언해도
약속된 또 하나의 마징가제트는 만들어진다


*시집.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천년의시작

 

 




오줌발 - 이돈형


동신수산 화장실
중년의 한 남자가 옆에서 지퍼를 내리고 있다
머리를 연신 끄덕이며
오장육부를 거품 물고 돌아다닌 그가 그를 싸버리고 있다
지금은 무엇을 물어봐도
긍정에 긍정을 더할 그에게
두 다리를 더 벌려 꿋꿋해지길 원한다면
필름 끊겨 술상 뒤엎을 이 밤이 부정 탈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자세가 아니라
여전히 비우고 있는 변기의 자세

오줌발은 가늘고 자주 끊겨
끙끙거리며 힘을 주는 그에게
변기 속 거품마저 살아온 거품으로 보였을까
시원스럽게 갈기고 다시 공손한 자세로 술상 앞에 앉고 싶을 테지만
좆도 못난 놈처럼
변기에 투항하듯 찔끔찔끔 흘리고 있다
이제 체념도 긍정의 일부라고 온 몸을 떨며
끝까지 몇 방울의 오줌을 육중한 몸으로 털어낸다

덜 취한 내가
풀죽은 우리를 살려보겠다고
거품이 이글거리도록 오줌발을 세우고 싶었는데
우리는 고개가 들리지 않는 끼리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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