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유통기한 - 장승욱

마루안 2019. 4. 12. 21:21



유통기한 - 장승욱



초등학교 4학년 때
단짝 친구에게 단언했다
내 나이 마흔
그때 나는 지구에 없을 거라고


요절은 꿈이었고 당위였고
손금에 새겨진 운명이었지
이상이 내 아저씨였고
기형도가 내 친구였다


기형도 20주기 모임에 가자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오늘
2009년 2월 10일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유통기한은 얼마나 지났는지


내가 계란 프라이도 해 먹고
맛나게 두부도 부쳐 먹는
'참빛고운 콩식용유' 병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2006년 4월 13일까지'



*시집, 장승욱 시, 지식을만드는지식








며칠 사이 - 장승욱



며칠 고개 돌린 사이
목련이 져 버렸다
빈 가지만 남아 있다


이제야 생각하니
내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며칠 딴 데 보고 있는 사이
경부선 마지막 열차
잡아타고 떠났을 것이다


까짓것 잊으면 된다고
못 잊으면 한 사나흘 뒤
첫차 타고 돌아오면 된다고
그러면서 영영 떠나갔을 것이다


며칠 사이 마음 떠다니는 사이
봄비는 소문 없이 내리고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낙망에 대해 노래하고....
노래하는 그 며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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