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해 봄, 노을 속으로 몸을 던진 사랑이여 - 황원교

마루안 2019. 3. 31. 20:01

 

 

그해 봄, 노을 속으로 몸을 던진 사랑이여 - 황원교


그해 삼월은 유난히 따스했다.
한 여자와 죽도록 사랑을 하여 동백꽃 같은 아이를 갖고
쥐똥나무 울타리 밑으로 봄을 속삭일 때
사랑만 있으면 배고프지 않고
사랑 때문이라면 기꺼이 죽어도 좋을
그 어리석은 희망이 무참히 낙태된 저녁,
나의 사랑은 꽃샘추위에 언 꽃처럼 떨어지고
떠나간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급성 폐렴과 열병에 시달리며 그렇게 봄이 가고
아침이면 베갯잇에 묻어 있는 한 움큼씩의 머리칼을 보며
의사는 항생재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끝끝내 용서할 수 없는 사랑이 증오를 낳고,
분노를 낳고, 절망을 낳고,
더 이상의 출산 능력을 상실한
폐경기 여자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해 봄, 노을 속으로 몸을 던진 사랑이여!


*시집, 빈집 지키기. 문학마을사


 

 



九節草 - 황원교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한 조각, 사랑의 파편
연분홍빛 아우성으로
다시 일어서
미친 듯 준령을 헤매는 아픔

바람결에 너를 보내고
눈물 뿌렸던 자리,
뼈아픈 추억의 자리마다
은하(銀河)처럼 발아하는 얼굴
문득 가슴에 이는 그리움

강 언덕을 허물고 일어서
홍수져 흐르는
강물처럼
사방으로 흘러드는
사랑이여,

너는 지금 어디쯤에서
무성히 만발해 서성이고 있느냐

버티고 섰거라.
아픔이 여물어
소담스럽게 싹을 틔울 때까지
내 가슴, 빈 자리마다
설사 이승이 아니더라도
햇살이 모여 숲을 이룰 때까지,





# 황원교 시인은 1959년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강원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0년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빈집 지키기>, <혼자 있는 시간>, <오래된 신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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