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이라는 말 - 이상국
휘영청이라는 말 그립다
어머니가 글을 몰라 어디다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누구 제삿날이나 되어
깨끗하게 소제한 하늘에 걸어놓던
그 휘영청
내가 촌구석이 싫다고 부모 몰래 집 떠날 때
지붕 위에 걸터앉아 짐승처럼 내려다보던
그 달
말 한마디 못해보고 떠나보낸 계집아이 입속처럼
아직도 붉디붉은,
오늘도 먼 길 걸어
이제는 제사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의 타관객지를 지나 떠오르는
저 휘영청
휘영청이라는 말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쫄딱 ―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잠깐 사이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 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반갑고 당당할 줄이야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덫이로구나 - 장시우 (0) | 2019.02.21 |
---|---|
사랑니 - 김종필 (0) | 2019.02.21 |
길은 저 혼자 깊어간다 - 나호열 (0) | 2019.02.20 |
방향을 묻다 - 이도훈 (0) | 2019.02.20 |
포충망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 황원교 (0) | 2019.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