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포충망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 황원교

마루안 2019. 2. 19. 19:55

 

 

포충망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 황원교


포충망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부질없는 날갯짓과 몸부림에 살점은 해지고
부서진 날개가루가 공중에 떠올라 노을 빛에 반짝인 잠시 후,
나비는 곤총 핀에 찔려 유리 상자 속의 표본이 되고
진혼의 나팔 소리도 없이
또 날이 저문다
바람처럼 세월은 가고
푸른 망사 저고리 걸쳐 입은 생애도 저물고
아이들은 닭장 속으로 사라진다
손바닥만한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불침번을 서려는 십자가들이 불게 발광하며
어둠 저 편에서 걸어온다
천국의 길은 어디쯤에 있을까
하느님과 천사들이 산다고 믿고 싶은 그 곳,
아, 거기에 내가 꿈꾸는 사랑과 평화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단 꿀을 품은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하고 있을 거야
나비는 애써 즐거운 생각을 하며
눈꺼풀을 조금씩 내린다
어느덧 허공에는 초저녁 별이 깜빡거리고
산 채로 박제가 되어버린 나의 인생과
점점 숨소리 가늘어지는 나비의 주검이 둥근 바퀴처럼
어둠 속으로 쓸쓸히 굴러가고 있다


*시집, 빈집 지키기. 문학마을사

 

 




짐 - 황원교


너는 짐이다
똥지게보다 더럽고 냄새나는 짐이다.
칠순이 다 된 아버지에게 네 몸뚱이는 바위처럼 무겁고,
식구들의 어깨와 가슴을 짓누르는 근심이다
걱정거리다
석회질로 뻣뻣이 굳어 있는 네 관절은
간편하게 접을 수 있는 녹슨 침대다.
그래서 모두가 무서워하는
똥덩어리다.
쇠라면 녹여서 철근을 만들고,
바위라면 깨쳐서 골재로 쓰랴마는
그저 한 줌의 흙으로 썩을 고깃덩어리다.
퇴화를 거듭하는 멸종 직전의 동물이다.
천만 근, 억만 근 내리누르는
스스로도 지탱하기 버거운 짐.
그래도 아직 그 하중(荷重)을 당당히 견디며
눈물겹게 껴안고 살아주는
네 식구들이 고맙지 않느냐?
정겨운 이웃들이 있어
아직 살아 있다는 게 즐겁지 않느냐?





# 황원교 시인은 1959년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강원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0년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빈집 지키기>, <혼자 있는 시간>, <오래된 신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