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장 높이 나는 배 - 서규정

마루안 2019. 2. 11. 19:57

 

 

가장 높이 나는 배 - 서규정

 


진달래가 아름다운 건
순전히 벼랑 때문이라는 것과
이 작은 어선이 빛나는 것은
파도 때문이란 걸 동시에 알았습니다
가파른 것이라야 살맛이 나겠지요
도시 변두리를 전전하던 내 삶이
하도 밋밋하고 팍팍하여서
바다로 나가기로 결심했을 땐
한번도 내린 적 없는 눈이
산동네 언덕배기에 소복소복 내려 쌓여선,

나 어디까지나 비듬을 터는 비듬주의자로서
오늘 아침 파도 6~7m 너무 심심하고 잔잔해
차라리 해일로 불어오렴
내 몸을 걸레처럼 쥐어짜서라도 푸른빛이 다 터져 나오도록
폭풍우로 갈겨다오
이 바다에서 제일로 큰 배보다
가장 높이 뜬 배를 타고
벼랑벼랑 울고 싶으니

 

 

*시집, 겨울 수선화, 고요아침

 

 

 

 

 

 

멀리 나는 새는 가지 끝에 앉지 않는다 - 서규정

 

 

모처럼 사위가 탁 트이고

사공들의 기분도 풍선처럼 뻥 터녔을 때

선장님은 목에 힘을 주고 말씀하시네

 

이 낡은 선박이 그나마 이 바다를 견디는 건

순전히 용접불꽃처럼 파랗게 달라붙은

새똥 덕분이니

바다에선 일차적으로 똥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산다는 것 또한 똥 한번 크게 싸자는 것 아니냐

멀리 나는 새는 가지 끝에 앉지 않나니

자신의 똥 자리를 천당이라 생각하고

까라면 까고 싸라면 싸고 엉야

 

기러기 날개 밑을 파고드는 서녘하늘 피똥빛에 물들어 가리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을 만큼만 가리

 

 

 

 

*시인의 말

 

어느 해

혼자 가 보았던,

마곡사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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