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그것도 너의 운명 - 이진명
내가 너를 등지니 시간
너는 홀로 가는구나
앞만 보고
가여운 시간이여
오만하였지
그렇게 앞만 보고 가다가
발밑 구렁텅이에 빠지면 어쩌리
뒤에 어느 못된 놈
낚아채면 어쩌리
끌려갈 것인가 오물 뒤집어쓸 것인가
낮과 밤
그렇게 얼굴을 바꿔 똑딱거리더니
종잡지 못하게 하더니
시간 그것도 너의 운명
차라리 어느 못된 놈
싯누런 웃음 갈퀴에
세차게 후려쳐지는 것
너는 너의 운명에 맞게 가라
시간 내가 너를 등지니
앞으로 똑바로 뒤돌아보지 말고 서지도 말고
어느 공들임도 너만 못하랴
그러나 그 무슨 공들임도 너보다 못하기도 하다는 것을
내 또 아느니
*시집,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문학과지성
쉰 냄새 - 이진명
쉰 냄새는
지나친 냄새
모든 익은 것들이 이상해질 때는
쉰 냄새가 난다
분명 알맞게 익어서
처음에는 향기로웠을 그것이 쉬는 데는
수십 년 만의 이상 기온
섭씨 삼십팔, 구 도의 장마철 찌는 더위 한낮으로 금방이다
알맞게 익었던 그것이 향기로웠던 그것이
한낮 잠깐 사이
쉰다는 것은 슬픈 일
이상 기온뿐이 아닌 이상 정황 이상 심리 속에서일지라도
쉽게 쉰 냄새 피우지 않으려면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맞게 잘 익은 다음에도
소금을 더
물기를 아주 싹
쉰 냄새는
지나친 냄새
모든 익은 것들이 익은 그 다음에도
어떻게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이상 기온도 탓은 탓이지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
무엇을 속에 계속 넣고 있지 말고 비우기를
자리를 고집하지 말고 구멍 숭숭한 허한 곳으로 나가 앉기를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혈관에 스며드는 마취제처럼 - 정세훈 (0) | 2018.12.22 |
---|---|
낡은 구두 - 백성민 (0) | 2018.12.22 |
바람의 혀 - 박연준 (0) | 2018.12.21 |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 - 김왕노 (0) | 2018.12.21 |
평소의 생각 - 김륭 (0) | 2018.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