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수레바퀴 아래서 - 우대식

마루안 2018. 11. 12. 20:01



수레바퀴 아래서 - 우대식



비가 오는 가을
국화 옆에서 내 몸도 시드나 보다
지상에서 사람을 만나
몇은 이별을 하고 몇은 남았다
쇠살로 된 수레바퀴 아래서
한 철에서 다른 한 철로,
이것이 여행이라면 빨리 다른 곳에 닿고 싶다
비가 오나 보다
젖은 것들이 내 안에서
안개가 되어 피어오른다
사람 이전
깊은 중력의 물기를 머금고 올라오는
푸르고 푸른 감각들,
깊은 상처 위에 혓바닥을 대본다
더 따뜻하게 비를 맞고 서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천년의시작








역마 - 우대식



내 갈비장에 묶어 놓은 개가 자꾸 날 물려고 한다
밤이면 콘크리트 모서리에 이빨 가는 소리도 들린다
한 번은 깊숙이 물고 싶은 거다
날이 선 이빨로
목사리도 끊고 갈비장도 무너뜨리고
주인을 갈기갈기 찢고 떠나고 싶은 거다
어느 달밤
주인의 내장까지 다 파먹고
가죽들마저 썩기를 기다리는 거다
길게 소리 한 번 지르고 산을 울리고 난 다음
전리품처럼 갈빗대를 물고 떠나고 싶은 거다
글려가는 내 육신의 신음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질질 내 껍데기가 끌리면서, 소리지르면서, 내게도
들리면서 나도 개와 함께 떠나고 싶은 거다






# 우대식 시인은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숭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아주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