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 놓인 침대 - 유계영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맞은편으로 살다 죽은 사람을 만질 수 있다
엎드려 누우면
이쯤이 당신의 팔 달렸던 곳
바람에 쓰러진 나무를 본 적이 있다
딱 한 번 벌어진 일이다
나무를 평생토록 감추려던 빛이 뒤집어져 있다고 적는다
맞은편의 사람은 그러지 말라고 소리친다
유언을 남기고도 오래오래 더 살았던 노인들은
어둠 속에서만 돌아다녔다
혹은 모닥불처럼 눈먼 지팡이를 짚고 새벽 시간에
눈 감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숨바꼭질과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는 날에도
맞은편의 사람은 그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떤 날의 꿈을 받아 적으면 한 문장에 끝이 났다
컵에 담긴 양파보다 내가 나은 점은 뒤로 걸을 줄 안다는 것
더 자란 것은 애어른처럼 보기에 좋고 먹을 수 없다
나는 똑바로 고쳐 눕는다
그가 너무 많이 참견해오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맞은편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자신이 들켜버린 비밀을 지켜달라 말한다
*시집,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문학
언제 끝나는 돌림노래인 줄도 모르고 - 유계영
불행을 느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탓하기
다지증의 발가락처럼 달랑거리는
다섯 아닌 여섯, 외롭지 않게
모르는 사람의 기념사진에 찍힌
나를 발견하듯이
오늘날의 태양은 상상의 동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건 죄다 남의 살이고 남의 피일까
강물에 돌을 던지고 물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던진 돌을 잊어버린다
컵 안을 응시하면서 컵에 담긴 것을 마시기
너밖에 없어 같은 말을 믿는 짝눈이 되기
안색이 왜 그 모양이냐
바깥에서 형형색색이 묻는다
잠든 사람의 감긴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가 바라보는 곳에서
내가 거의 완성될 것만 같은 기분으로 느껴요
꼭 길이 아닌 곳으로만 가려 하는 개와 어린이가
수풀 속으로 뛰어든다
검정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사라지면서 휘날리면서
나의 내부에 더 깊고 긴 팔이 나를 끌어안고
강바닥을 향해 가라앉는 돌
여섯 아닌 일곱,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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