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루에서 - 우대식
아버지 업어 드릴게요
이승에서 마지막 밤인가요
날아가는 화살처럼 우리들 가슴에 꽂힌 것은
무엇인가요
질기고 더러운 상처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네요
코스모스가 막 피어난 가을날
아버지,
여기서 저기까지만 함께 가세요
지상의 바람도 가을 나루터에서
조금씩 울고 있네요
이 배를 타면
은빛 갈대들이 손을 흔들어 맞아주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가 밥을 짓고
멀리 돌아가는 다래강가에는 연기가 흐르겠지요
테테테테 헬리콥터 나르는 하늘 아래 고인 물만도 즐거운
고향 생각하세요
아버지,
한 잔만 드세요
그리고 업히세요
여기서 저기까지만 업어드릴게요
고향 작은 개울에서 만나요
초여름쯤 만나요
그때 꼭 다시 업어드릴게요
흐르는 물이 되어 꿈이었다고
아주 긴 꿈이었다고,
아버지,
*시집, 설산 국경, 중앙북스
기일 - 우대식
오래전
아버지한테 업혀서 강을 건넜다
어두운 밤
물소리는 그토록 수다스럽게 흐르고
아버지는 간혹 내게 물었다
'괜찮냐'
아버지 사촌들도 함께 물을 건너며
옛이야기를 하다가 큭큭 웃곤 했다
물 건너 마을에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초여름 할아버지 기일
당숙 아저씨도 내게 물었다
'괜찮냐'
건너편 산에는 쑥국새 울고
누군가는 미끄러운 돌을 밟아
넘어질 뻔도 했다
지금 할머니가 된 사촌 누이는
내 발가락을 간질이며 쫓아오고
큰엄매는 등잔 아래 큰 그림자로
우리들 기다렸다
떡이며 산적이며 약밥이
봉당에서 바람 쐬고 있었다
강물 따라 큰집 가던
그리운 식구들
그들이 내게 묻던 말
'괜찮냐'
*시집, 단검,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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