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 나루에서 - 우대식

마루안 2018. 9. 4. 22:56

 

 

가을 나루에서 - 우대식

 

 

아버지 업어 드릴게요

이승에서 마지막 밤인가요

날아가는 화살처럼 우리들 가슴에 꽂힌 것은

무엇인가요

질기고 더러운 상처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네요

코스모스가 막 피어난 가을날

아버지,

여기서 저기까지만 함께 가세요

지상의 바람도 가을 나루터에서

조금씩 울고 있네요

이 배를 타면

은빛 갈대들이 손을 흔들어 맞아주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가 밥을 짓고

멀리 돌아가는 다래강가에는 연기가 흐르겠지요

테테테테 헬리콥터 나르는 하늘 아래 고인 물만도 즐거운

고향 생각하세요

아버지,

한 잔만 드세요

그리고 업히세요

여기서 저기까지만 업어드릴게요

고향 작은 개울에서 만나요

초여름쯤 만나요

그때 꼭 다시 업어드릴게요

흐르는 물이 되어 꿈이었다고

아주 긴 꿈이었다고,

아버지,

 

 

*시집, 설산 국경, 중앙북스

 

 

 

 

 

 

기일 - 우대식

 

 

오래전

아버지한테 업혀서 강을 건넜다

어두운 밤

물소리는 그토록 수다스럽게 흐르고

아버지는 간혹 내게 물었다

'괜찮냐'

아버지 사촌들도 함께 물을 건너며

옛이야기를 하다가 큭큭 웃곤 했다

물 건너 마을에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초여름 할아버지 기일

당숙 아저씨도 내게 물었다

'괜찮냐'

 

건너편 산에는 쑥국새 울고

누군가는 미끄러운 돌을 밟아

넘어질 뻔도 했다

지금 할머니가 된 사촌 누이는

내 발가락을 간질이며 쫓아오고

큰엄매는 등잔 아래 큰 그림자로

우리들 기다렸다

떡이며 산적이며 약밥이

봉당에서 바람 쐬고 있었다

강물 따라 큰집 가던

그리운 식구들

그들이 내게 묻던 말

'괜찮냐'

 

 

*시집, 단검, 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