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담쟁이꽃 - 마종기

마루안 2018. 8. 27. 19:29



담쟁이꽃 - 마종기



내가 그대를 죄 속에서 만나고
죄 속으로 이제 돌아가느니
아무리 말이 없어도 꽃은
깊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죄 없는 땅이 어느 천지에 있던가
죽은 목숨이 몸서리치며 털어버린
핏줄의 모든 값이 산불이 되어
내 몸이 어지럽고 따뜻하구나.


따뜻하구나, 보지도 못하는 그대의 눈.
누가 언제 나는 살고 싶다며
새 가지에 새순을 펼쳐내던가.
무진한 꽃 만들어 장식하던가.
또 몸풀 듯 꽃잎 다 날리고
헐벗은 몸으로 작은 열매를 키우던가.


누구에겐가 밀려가며 사는 것도
눈물겨운 우리의 내력이다.
나와 그대의 숨어 있는 뒷일도
꽃잎 타고 가는 저 생애의 내력이다.



*시집, 이슬의 눈, 문확과지성








造花 - 마종기



아직 비석도 세우지 못한 네 무덤
꽂아놓은 조화는 아름답구나.
큰비 온 다음날도, 불볕의 며칠도
조화는 쓰러지지 않고 웃고 있구나.
무심한 모습이 죽지 않아서 좋구나.
향기를 남기지 않아서 좋구나.


나는 이제 살아 있는 꽃을 보면
가슴 아파진다.
며칠이면 시들어 떨어질 꽃의 눈매
그 눈매 깨끗하고 싱싱할수록
가슴 아파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아프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나가는 배- 윤제림  (0) 2018.08.28
벌목 - 김상철  (0) 2018.08.27
단골 - 문신  (0) 2018.08.27
알츠하이머와 파킨슨의 동행 - 김연종  (0) 2018.08.27
발리송 - 정다운  (0)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