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일 - 김명인

마루안 2019. 1. 28. 22:12



내일 - 김명인



자정을 긋고 가는 하루하루가
내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을 지나거나
어둠을 접붙이는 용접공의 불꽃을 거쳐서 갔다


내일이란 닳도록 졸여도 눌어붙지 않는
소슬한 희망이거나 구름에 엉기는 바람결 같아서
저물면 누구라도 소문 곁으로 잠을 풀겠지만
깨어나면 강물에 실린 거룻배의 아침일 것이다


오늘이 가고 오늘이 와도 내일은
둘레가 쓰는 복면처럼 자욱할 뿐


미지를 사랑하는 여러분!
그는 앞장서 내일로 떠났습니다
그를 따르려거든
쉬지 말고 걸어 내일로 가십시오


자정을 두드리는 혼곤한 수신호라면
그건 내일에의 의지,
열대우림에서 베어진 통나무가 얼음박물관의 기둥이 되듯
쓰임새 모르는 내일은 저를 쓰려고
먼 곳에서 먼 곳으로 옮겨 가는 중이다



*시집,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문학과지성








너머 - 김명인



너머로의 출발은 일생을 바치는 여정,


어릴 적에는 배를 타고 떠나보려 했다
하루 종일 저어가도
연무에 싸인 수평선은 수평선인 채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아득해서 궁금한
그곳을 바라보느라 키가 자랐지만
너머는 여전히 너머일 뿐,


여행은 목적지가 분명해서 좋았다
살아선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출발지가 목적지기도 한 여행,
그런데 네가 너머로 잠적해버렸다면?
어깨 위에 산다는 짐승의 울음소릴 혼자 들었다


너는 왜 아직도 믿게 하니?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라 주장하면서
봄 들녘 초록처럼 번져오는
스산한 너머가 있는 거라고!


그러므로 만나지 못한다고 이별은 아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가
우리 모두를 바닥에 쏟아버리지만
실상은 너머로 간다는 것,
불현듯 너머가 생생해져
깬 잠이 좀처럼 다시 들지 않는다


약속이 아니어도 언젠가 마주치리라는
채울 길 없는 갈증으로 너는 기다리니?
광활한 우주의 이 한 자리
혼신을 다한 수평선이 내 앞에 펼쳐져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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