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촌년의 은유 - 황종권

마루안 2018. 11. 21. 22:03



촌년의 은유 - 황종권



오직 촌년의 이름으로
저녁이 흘레붙는 몸이었다.


개켜놓은 속옷을 자주 잃어버렸고
곱게 접은 관절 속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있었다.


다른 몸에 있어도


또 피부가 검어졌다.
그건 도시가 아닌가.
가장 고루한 체벌이 아닌가.
살갗에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너무 자명한 것을 보면 살 섞는 일에 능란해지고
수돗물을 들이켤 때마다
묽어지는 것을 체위라고 불렀다.


신음이 창궐하는 뻘밭, 주저앉은 섬, 곱추 등에 언 발을 푸는 물새, 더럽도록 짠물, 뻘배가 지나간 자리, 질퍽한 햇빛


일평생 멸시할 은유를 그러모으고
나는 그 어디도 가지 않았다. 결국,


오직 나의 발목으로
가랑이가 차가운 빌딩 사이를 걸었다.
무릎이 뜨거웠다.
땀이 났다.
짠 내가 났다.


은유가 증발할수록
도시의 속내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마음보다
몸을 묻는 일에 뜨거워지고 있었다.



*시집,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천년의시작








어떤 여행자 - 황종권



사막의 여행자는 발이 사라진다고 했다 죽은 새에서 뜯긴 허공이 쏟아져 나올 때, 지명이 있다고 믿겠지만,


여행자는 무릎을 꿇고 낙타가 죽은 묘비 앞에서 돌을 세워놓는다


사막에서는 미신이 하나의 감정이 되고
신비롭게도 여행자는 풍경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풍장되는 뼈를 보고 아름다운 고함을 지른다 그 고함은 사실, 죽음을 잊기 위한


자세다 아니다 목소리가 사라질까 봐 뻗어가는 가시다 선인장이 사막을 옮기듯이 여행자는 자기의 내면을 옮긴다


내면 어디엔 낙타가 있겠고 내면 어딘가엔 오아시스를 파는 모래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여행자도 사막을 무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황종권 시인은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로 알려져 있다. 아니 지금도 유도는 계속 하고 있고 대회도 출전한다니 현직 선수라 해도 되겠다. 어릴 때 유명 시인들의 시를 필사해 놓은 어머니의 노트를 발견하고 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자연히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시인이 되었다.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람은 왠지 시인과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시를 아주 잘 쓴다. <185>. 밑도 끝도 없는 숫자가 아니라 185는 키 185cm를 넘는 시인들, 이병철, 이병일, 류근 등이 포함된 일종의 동인 활동이란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길게 지켜 볼 만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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