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에 대한 보고서 - 한관식
왼손에 대한 보고서 (하나) - 한관식
진눈깨비 오는 어느 날
가위질 소리 잘강잘강 마을 안에 부려놓고
목에 걸친 끈이 지탱하는 엿판을 가슴께에 얹어
어깨춤까지 합세하면 그대로 광대더라
개똥이 짱구 칠칠이 오줌싸개 죄다 불러 모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엿판이 바닥을 보일 때
피맺힌 절규를 쏟아낸다 -내 다리 내놔라!
그때 엿장수 한쪽 다리는 의족이더라
빗살무늬 유리로 된 욕실 안으로 나를 접는다
그녀를 모텔로 기막히게 데려오기까지
한 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혹시 사탕발림이
안 먹히지 않을까 다각도의 노하우로
방문 손잡이를 돌릴 그 순간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잠깐, 방심한 나를 욕실 문 그림자로 본
그녀는 기겁을 해 소리친다 -어머나, 가짜 팔이네!
그때 나의 한쪽 팔은 의수더라
*시집, 밖은 솔깃한 오후더라, 보민출판사
왼손에 대한 보고서 (여섯) - 한관식
짐작은 했겠지만
잡으면 잡히지 않고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는
장애의 증후를
지금도 끊임없이 되묻는 행방과
안팎에서 벌어지는 낌새의 소스라치는 현실
머리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균열된 채
쩍쩍 갈라지는 틈 사이로 파지들이 쌓이고
설득하고픈 오른손은 새로운 세상과 접속을 시도한다
짐작은 했겠지만
현명한 결별의 시기를 택하기 위해 이정표도 없는
마을로 스며들어가 겨울 어디쯤에서 가방을 부려 놓는다
살찐 달 하나 산골의 밤을 도왔나
신문지 벽지가 더께한 아랫목에
메주는 익어가고 수상쩍은 곰팡이를 털어내자
희망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바람은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 한관식 시인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2007년 <시사문단>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비껴가는 역에서>, <밖은 솔깃한 오후더라>가 있다. 5년 전 사고로 왼손을 잃고 얇은 옷 속에서 떨고 있는 자신에게 문학을 선물했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아름다운 생과 타협하며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