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수지 - 서광일

마루안 2019. 7. 12. 22:00



저수지 - 서광일



막 동네 어귀를 들어서는데
물새 떼가 날아오른다
홀홀 투명한 실비듬을 날리는 갈대들
몇은 물가에 모여 씻을 준비를 하는지
시린 손을 호호 분다


바빴지 올해도
산꼭대기부터 모아 온 도랑물이며
발 씻은 물까지 받아 두느라
방죽은 아랫배에다 꽉 힘을 주고는
윗배미 아랫배미 할 것 없이
비린내 나는 제 새끼들을 흘려보냈으리
품에 없던 철새들마저 먹인다고
얼마나 잡풀을 일으켜 세웠을까


집 떠나 뿌리 뻗은 자식들
저마다 크고 작은 물오름으로
살집 좋은 열매가 되고 그 많은 씨앗들
배불러, 산란하고 부화하고
알음알음 방 한 칸도 얻었다가
아이도 가질 것이다


몇 밤이라도
어머니 곁에서 자야겠다
한 번이라도 먼저 눕는 일이 없는
축 처진 배를 만져 보니 불룩하다
주름주름 여태 뭘 채워 두고 계신 걸까


머리맡에 자리끼 한 대접 놓아둔다



*시집,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출판그룹 파란








숫돌 - 서광일


지그시 논두렁을 본다

낫을 꺼내 퍽 얇아진 날을 재더니
숫돌에 도랑물을 바른다
이로세로 쇳물 오르던 낫 머리
퐁 물질 한 번 한다

웃자란 잡풀들 쓰러진다
무더기무더기 잘 드는 삼중 면도날처럼
미끄러진 자리마다
풀내 가득한 징검다리 놓인다


아침저녁으로 꼴을 베던 손끝에
오십 년 된 풀물이 들었다
날이 무뎌질 때마다
아버지는 어디에다 자신을 갈았을까

무척 말수 적은 아버지
어느새 숫돌처럼 얇아졌다
요샌 슬슬 살을 비벼도 본다
비릿한 쇳내가 난다






#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 준 것만으로도 커다란 은혜를 입었는데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님의 일생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피와 뼈를 받고도 모자라 부모의 살을 파 먹은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짐승인가. 긴 여운을 남기는 좋은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