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먼 길 - 이원규
마루안
2019. 6. 30. 18:52
먼 길 - 이원규
돌담 위의 굴뚝새야
앞 도랑의 버들치야
강 건너
산 넘어 간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그곳에도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한번 가보는 것이다
저승길이 대문 밖이니
인연이 다했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
저 세상에
더 많지 않겠느냐
*시집, 옛 애인의 집, 솔출판사
낡은 집 彼我山房 - 이원규
오래된 집은 오래간다
전에 살던 할머니는 꽃상여 타고
피아골 건너 피안에 이르렀지만
그와 나의 경계는 문득
군불 지피는 아궁이 속에서 사라진다
돌절구 속에서 으깨어지고
비릿한 밤꽃 향기에 더욱 희미하고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가축들은 불쌍하다
인공, 인공의 날들
서로의 몸을 만나지도 못한 채
아이를 낳는 일이
어찌 가축만의 일이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인공 수정되는
가상현실의 날들이여)
지극한 현실은 여기에 있다
혼자 먹는 식은 밥과 파리와 솟대
모기 쥐똥 절구통 나비 열무 피마자
산문 밖에서 날 기다리다
승용차에 깔려 죽은
강아지 아피가 현실의 현실이다
낡은 집 피아산방
오갈 데 없는 영혼들의 우체국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
나의 별이 이마를 짚어주고 간다
그렇다
신도 이따금 외롭게 트림을 하고
고통스럽게 인간이라는 똥을 싸는 것이다
내리 사흘
밤만 까먹고 밤똥을 싸고
내리 사흘 꿀만 퍼먹고
꿀똥을 싸는
세상 도처의 낡은 집 피아산방
바로 지금 이곳이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