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래된 수면 - 정훈교

마루안 2019. 6. 15. 19:19



오래된 수면 - 정훈교



기억나지 않는다
실루엣으로 남은 울음만 가득한 방이다
사방으로 분주한 방이다


무논 개구리 소리도 잠잠하기만 한데
오히려 충혈된 눈만 가득한 방이다


딱히 목적도 거처도 없는 듯한데
오래된 눈동자만 그렁그렁한, 방


짧고 비릿한 호흡이 긴 수면에 들었다
수면을 받아내는 이들의 호흡은 길기만 하다


밤이어서 꿈을 꾸는 건지
밤이어서 말을 잃은 건지


고모가 아부지가 울음을 삼키고야
모든 게
밤인 걸 알았다


할아버지 수면은 참으로
길기만 하다



*시집, 또 하나의 입술, 문학의전당








갈 수는 있어도 올 수는 없는 당신​ - 정훈교


푹푹 나린다
구름에 찍힌 새의 발자국이 허공을 간다 하늘이 저녁 내내 속앓이 중이다

펄펄 끓는다
가슴에 찍혔던 말이 내려앉지 못하고 허공을 간다 둥근 혀가 내내 속앓이 중이다

펑펑 쏟는다
갈 수는 있어도 올 수는 없는 당신이 있어, 하염없이

모든 것을 비워주고, 오롯이 혼자가 된
오늘, 정동진행 막차를 기다리며


​역전 식당에 앉아
내장탕 한 그릇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