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이 사랑한 사람 -김남권

마루안 2019. 6. 12. 21:35

 

 

꽃이 사랑한 사람 -김남권


너는 강원도 오대산 골짜기의
이름 모를 들꽃이었다가
들꽃을 흔들어주는
바람이었다가
바람 속 들꽃 향기를 품은
물안개로 팔월의 풀이파리 속속들이
푸른 별빛을 풀어놓을 것이다

너는 비로봉 자락 겹겹이 흘러내린 능선마다
소나무가 흔들어주는
풍경소리였다가
풍경 속에 들어앉은
금강초롱이었다가
금강초롱이 머금은 새벽이슬이었다가

이슬이 밤새 풀어놓은
초연한 별빛으로 깨어나
이름 없이 피어나는 꽃,
그 꽃이 보기에 가장 흐뭇한
사람이 진정 너일 것이다


*시집, 빨간 우체통이 너인 까닭은, 오감도

 

 

 

 

 

 

인연의 길 - 김남권

 


망설이지 말고 은밀하게
몸이 적멸(寂滅) 하는
마음이 일러주는 길을 가라

고운 한지에 켜켜이
꽃잎을 싸는
향기로운 인연
마치 농현(弄絃)하듯이
때론 아프지만 불꽃이 되고
때론 기쁘지만 비수가 되어
혼이 물속에 잠길지언정
그대 심중에 있는 길을 따라가라

눈 속에서 솜다리꽃이 피어나고
바람 속에서 수선화가
안타까운 몸짓으로 흔들리는,

비가 오면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젖지만
바라보는 눈길은 그리움 때문에
그리움을 더 채우게 하듯이

가슴에 품은 인연
망설이지 말고
가마 속의 도자기처럼
불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