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드스탁을 떠나며 - 김요일

마루안 2019. 6. 2. 21:39



우드스탁을 떠나며 - 김요일
―고백컨대, 신촌의 절반은 내 것이었다



철없던 계절의 뒷골목아, 안녕
뒤돌아보지 않으마


(3번테이블,볼셰비키앉아맥주를마신다)


안녕, 쓸쓸히 머리 푼 가로수야 마른 잎들아
나는 너를 떠난다
색 바랜 청동의 영웅도, 자욱한 최루탄 연기 같은 추억도
이젠 게워 내련다 돌아보지 않으련다


(늦게떠나는바캉스처럼기대도낭만도담지않고이것저것아무거나배낭에구겨넣고서간다)
(에릭사티도,에곤쉴레도이젠없다이곳엔)


푸른 피 가득한 거리를 지나
냄새나는 추억을 밟고
폭설이 퍼붓기 전에 처마의 고드름 심장에 처박히기 전에


간다, 황급히 도망가련다


(깊게팬옷을입은클라라의하얀가슴위엔반달이뜬다)
(숨이막힌다흩날리는꽃잎꽃잎꽃이파리들....)


세월이 조롱할지라도, 이제 난 꿈을 꾸련다


(지미핸드릭스의기타가부서진다)
(거리엔보르헤르트,비틀대며걷는다)


누르고 참았던 슬픈 기억처럼
울컥,
태양이 솟는다, 찬란한 비애여!


건배!



*시집, 애초의 당신, 민음사

*우드스탁: 신촌에 있는 단골 술집 이름, 1969년 '록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평화에 대한 갈구'를 기치로 미국의 Woodstock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서 이름을 따왔다.








은경이네 - 김요일



별빛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바빌론 강가의 네 번째 동방박사처럼,
사내는 오지 않을 누군가의 잔에 술을 따른다


그녀는 졸고 있다


잠 쫓던 그녀의 눈처럼 반쯤 열린
문밖으로
신촌의 밤이 지나가고, 쉰내 나는, 뒷골목의 계절이 지나가고
쓸쓸한 옆얼굴들이 지나간다


그는 어디 있을까?


종국(終局)의 생에 자리 잡은 듯 사내는
말라 가는 안주처럼
무료한 눈빛으로 앉아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봄이 되어도 부활하지 않는 꽃들에 대한 낡은 소문을 듣는다


전생도 영원도 확신할 순 없지만
취한다는 건 종국의 생을 선명히 떠올리는 일
사내는 세속적으로, 세속적으로
빠르게 독주(毒酒)를 들이킨다


제 갈 길을 분명히 알고 떠나는 별들처럼
그도, 꽃들도 제 안식처로 유성처럼 홀연히 흘러들어 갔겠지


늙은 암탉처럼 꾸벅 꾸우벅 졸던 그녀가
푸드덕,


홰를 치며 잠에서 깨어난다



*은경이네: 신촌 현대백화점 건너편 뒷골목에 위치한 실내 포장마차






# 우드스탁은 20년 전쯤에 친구 따라 한 번 가봤고, 은경이네는 주인과 간판이 바뀐 후에는 거의 안 간다. 40년 가까이 신촌에 살다 보니 해마다 성형수술을 하는 뒷골목 풍경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추억을 반추하는 낭만 가득한 시인의 생각과는 다른 견해다. 천성이 날개 금간 바퀴벌레처럼 조용하고 어두컴컴한 구석탱이를 좋아하는 터라 우드스탁의 요란함은 내 체질이 아니다. 희한하게 식성은 바뀌는데 체질은 안 바뀐다. 대책 없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