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아물다 - 김명기
꽃과 함께 아물다 - 김명기
팥 알갱이만 한 철쭉망울 얼핏얼핏 비칠 때
발가락 하나 부러졌다
피멍 든 채 퉁퉁 부어오른 발가락을 내려다보며
세상에는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해도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토록 오랫동안 작은 발가락 하나를 들여다 본 적 없다
땅바닥을 딛지 못해 뒤꿈치로 걷고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발목이 붓고
부은 발목이 뻣뻣해져 자꾸만 쥐가 내린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은 것 하나도
공평한 힘의 분배가 깨어질 때
모두가 부실해져간다는 사실
어혈 풀리듯 망울이 꽃잎 펴는 동안
잎 피운 꽃들이 산지사방 번져가는 동안
발바닥이 땅바닥으로 되돌아오는 시간
꽃 피고 지는 사이 잠시 통증이 다녀갔고
꽃과 나 사이 통증이 놓고 간 알음 하나 남았다
바닥은 서로 맞닿을 때 비로소 온전히 견딜 수 있다는
*시집, 종점식당, 애지출판
바람의 눈물 - 김명기
흰 테 두른 은빛 구름들이 분열(分列)하듯
밀려드는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간다
오전 다 지나 막 오후 무렵
구름이 밀려오는 모퉁이를 돌며
눈물이 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것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하지만 그 마음 또한
깊고도 깊어 수식으로 풀 수 없는 일
산다는 일의 전개 방식은 늘 낯설다
누가 그것을 새로운 일이 아니라 말할 수 있나
밀려드는 구름 뒤에는 뭐가 있나
손바닥을 스치는 바람은 더 이상 차갑지 않은데
그 바람 뒤엔 또 뭐가 있나
메이는 가슴 위로 햇살은 끝없이 내리꽂히고
햇살에 매 맞은 가슴이 붉어지는 동안
자작자작 움트는 자작나무 아래로
기어이 이기지 못할 저녁이 오고
좁고 거뭇한 방에 들어서자 종일 매 맞은 가슴이
온몸을 털썩 주저앉힌다
입춘 경칩 지난 지 오랜데
나는 요즘 너무 자주 눈물을 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