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소년이었을 무렵 - 이용한

마루안 2019. 4. 30. 19:36



내가 소년이었을 무렵 - 이용한



바람을 날리며 너는 약간 부풀었고
강변에서 한 뼘씩 자랐다
극심한 나무와 실패한 사정들
불가피한 낭독이 흘러
어느새 발목이 젖었다
갈 수 있으면 가
아득하게 멈출 수 없었고
마음이 가고 마음이 식었다
유역을 돌아 차부에 이를 때까지
소매마다 덕지덕지 목련이 묻어 있었다
차라리 성냥이나 사서 돌아갈걸
시력이 망가진 문장 사이로
돌이킬 수 없는 겨울이 떠다녔다
분명한 저녁인데
어머니는 순전히 지붕에서 울었다
먼 이마를 스치는 구름 한 마리
외롭게 지나간 입술
손금에 칼을 그으며 이별을 외던
소년은 마침내 약한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지 말자고 돌아보지 않았다
오래된 봄이었고
파랗게 등이 휜 주점에 너는 앉아 있었다
이따금 세찬 사투리에 섞여 동백이 졌다



*시집, 낮에는 낮잠 밤에는 산책, 문학동네








고비의 사내 - 이용한



애당초 그것은 사막에 쓴 글씨 같은 것이다
그립다는 숨결조차
헐거운 말발굽이 휘젓고 간 흙먼지 같은 것
바람의 뼈는 만질 수가 없고
모래의 음악은 들을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떠나고 있지만
떠나면서 거듭 뒤돌아볼 것이지만
황혼의 궁륭엔 어느덧 유혈이 낭자하고
비린 적막 속에서 나는
가늘고 기약 없는 눈동자에 번지는 푸른 달을 보리라
고비고비 웅크리고 주저앉은
그것은 애당초 오지 않을 빗방울 같은 것이었다
외계로 떨어진 한 사내의 발자국 같은 것
간단하게 나뒹구는 길의 껍질 같은 것
거기서 낙타는 낙타만한 고통을 지고
물고기는 물고기만한 슬픔을 안고 사는 법이다
그러니까 어떤 인연이 운명이 되는 통속적인 믿음은
초원에 버려진 한숨 같은 것이다
너무 멀어서 멀어져버린
벅찬 간격이고, 간극이며
불분명한 언덕이고 세월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자꾸 귓가에 서걱이고
이따금 눈가에 맺힌다
분명하게도 나는 지금 너무나 흐릿하고
입 다문 고비의 잔별을 가엾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