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 김명인
삼류 - 김명인
진짜 사기꾼이 왕창 해 처먹고 날랐는데
어쩡어쩡 똥개마냥 따라다니다
감방이라면 도맡아 드나드는 머저리를 알고 있다
모처럼 집안 모임에 갔더니 두 달 전부터 또 갇혔단다
벌써 몇 번째야, 삼촌 삼촌, 외제 차 끌고 와서
으쓱댈 때 알아봤어야, 이번에는
생판 남한테 집적거렸다니 모면한
인척들이야 여러 번 당한 일로 한숨 놓겠지만
말 빌딩 올리던 저는 저번만큼 만만할까
천성은 제비인데 어디서 물고 오는 박씨일까?
바람으로 잔뜩 채워
풍선처럼 터뜨리나, 그게 뭣이라고
어설픈 바람잡이로 시답잖게 늙어가나
판정에서 사실을 바로잡겠다고?
진짜 시인이 어질러놓고 달아난 뒷자리의 서정처럼
말도 안 돼, 면회조차 안 갔는데
어느 순간 그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삼촌, 삼촌 시는 무슨 말인지 휑하니, 삼류라고요
속이는 줄 모르게 속는 게 시 아니에요?
*시집,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문학과지성
숙맥 - 김명인
끝을 기다리며 구석에서 조는 파장처럼
순서는 우리가 닿기 전에 여러 번 출렁거렸을 것이다
모든 막장은 늦게 도착해 혼자 떠들썩한 떠버리라
거대한 음모일수록 매만지는 손은 가냘프구나
달은 결코 뒤돌아보지 않으니
검은 개가 물탱크를 쳐다보며 컹컹 짖는다
착시의 끝에 매인 목줄을 늘어뜨리고
나도 그게 운명이라 짖은 적이 있다
예감은 길고 조락은 짧아서
우화에 절은 굼뱅이 한 마리
벗어나본 적 없는 필생까지 기어코 기어간다
그게 무도회에서 엿들은 밀담이라 해도
재난은 젖줄 마른 그대에게도 감춰진 비밀,
불시착하는 비행기 안에서 받아 쓰는 산소마스크처럼
황급하게 입이나 가리려고 온 세상이라면
이 별에선 콩과 보리나 정성껏 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