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손수건 - 변홍철

마루안 2019. 3. 17. 18:40



손수건 - 변홍철
-어떤 유전(遺傳)



엄마 젖을 맘껏 못 빤 아들놈이
이제 마악 더듬더듬 걷기 시작한 아들놈이
잠시도 놓지 않는
하얀 손수건


일하러 간 지 엄마 보고 싶어지면
으음마 으음마 울상 지으며 부벼 보는
그렁그렁 얼룩진 낯으로 잠이 들 때도
꼬옥 쥔 채 놓지 않는


그림책을 볼 때도
바퀴 달린 말을 탈 때도
볼때기에 밥알 붙여 가며
국물에 비빈 밥 꾸역꾸역 먹을 때도


마루 끝에서 끝
온 우주를 기어다녀도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 날


아들아,
언제 어디서부터 쥐고 온 거니
네 오랜 여행
길동무 같은 배고픔


사무치는 유전(遺傳) 같은



*시집,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 한티재








술꾼의 별 - 변홍철



나는 어느새 이상한 어른


선인장 꽃 혀 빼물고 모래 바람 부는 하루
일체의 지각 변동은 금지되었고
마음 약한 사람은 별에 매달려
술을 마신다


어느 날
긴 고독의 하루를
야자수 그늘로 걸어왔던 나의 미소년(美小年)
비단 목도리 훌훌 감고
다시 나를 버렸다


버림 받은 추억은 부끄러워라
부끄러운 기억은 다시 부끄러워라


부끄러움이 두려운
마음 약한 사람아


가까스로
가까스로 별에
매달려






# 이런 시를 읽을 때마다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사무치는 유전이란 대목이 더욱 그렇다. 내 어머니는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다. 들꽃을 참 좋아했던 어머니는 평생 소처럼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런 어미의 성격을 꼭 빼닮은 코흘리개 아들이 살아 남아 어느덧 흰머리 돋기 시작한 중년이 되어 이런 시를 읽는다. 사무치는 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