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직서 쓰는 아침 - 전윤호
마루안
2019. 3. 16. 22:08
사직서 쓰는 아침 - 전윤호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 먹히기 싫은 심정으로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집, 연애소설, 도서출판 다시
이력서 쓰는 밤 - 전윤호
식구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조심스럽게 불을 켜고
이력서를 쓴다
아직 실직한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깊이 잠들고
은행의 잔고만큼
밤은 춥다
손을 꼽아야 제대로 찾아가는
지나온 날들
돌아보면 언제나 제자리인 삶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과 싸웠다
위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한다고 도장을 찍으면서
나는 깨닫는다
한 장이 더 늘어난 이력서가
더 이상 내가 아님을
# 쓸 땐 당당하고 수리 되면 후회하는 것이 사직서가 아닌가 싶다. 꼭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이런 자괴감은 직장인의 뒷덜미를 누르는 스트레스다. 30년 장기 근속자도 매일 사직서를 썼을 터, 딱 1년만 하고 때려치자는 생각으로 1년 되고 2년이 쌓여 30년이 되었으리라. 이력서 쓰는 밤도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