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 날다 - 박형권
복지사 날다 - 박형권
대학 졸업하면 놀고먹는 것이 평균인 시대에
그녀는 청년실업의 딱지를 뗐다
정신과 폐쇄병동 복지사로 취직하였는데
거기는 정신분열과 알콜중독과 약간의 치매가
양송이버섯처럼 어울려 산다
페트병 다섯 병의 물을 마시고 물 중독으로 자살해 버린
새파란 청춘의 장례식장에서
수수팥떡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미술치료를 하는 날
치매는 똥 싸고 알콜중독은 오바이트하고
정신분열은 핵분열처럼 담배연기로 버섯구름을 피워 올렸다
치료는 무슨 치료
탁구대에 둘러앉아 울고 싶으면 울고 짖고 싶으면 짖고
쓰든지 그리든지 찢든지 물어뜯든지
마음 가는 대로 휘갈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게 뭘까 새 같기도 하고,
정신분열이 알콜중독에게 알콜중독이 치매에게
치매가 그녀에게 해죽해죽 웃으며
그녀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림을 전하였는데
그게 꼭 그녀더러 세상 짐 모두 짊어지고 승천하라는 요구 같고
그들도 그렇게 날개 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뜻 같고
아무도 없는 데서는 치매는 치매 아니고 알콜중독도 알콜중독 아니고
정신분열도 정신분열 아니니까
그래도 우리 같이 날아올라요 하는데
흐느끼며 철문은 닫혀 있고
수수팥떡은 올라오지 않고
*시집, 도축사 수첩, 시산맥사
그 방에는 <잠만 자실 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 박형권
그 방에는 <잠만 자실 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밖에 눈 내리는지
닫혀 있는 불면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그날은 유난히 새벽이 길어
기다리던 아침은 정오가 되어서야
얕은 잠을 깨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감나무 한 그루 냉동되어 있고
그 아래 판자로 얽어맨 변소가 있고
똥이 층을 이루어, 꽁꽁 얼어붙어
또 잠결에 똥구멍을 찔렸다
속을 비우면 밥 생각이 나지만
그 방은 잠만 자는 방, 계약에 없으므로
취사행위는 금지되어 있었다
급한 김에 짬뽕국물을 시켜서
대낮에 소주 한 병 까놓고 술기운 번지기 전에
추억의 첫 소절까지 먼저 번져 가야만 했다
고독이라면 넌더리가 났다
그래도 쇠죽을 끓이고 남은 힘으로 군불을 지핀 그 아랫목은 여전하기를
도시에 내린 첫날부터 내가 만난 것은 <잠만 자실 분>
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주인의 문간방에서 잠만 자고 있다
목숨 걸고 잠을 자야만 베개 하나 뿐인 인생을 지킬 수 있어서
평생에 단 한 번 여자를 불렀지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꿈꾸지는 않았다
잠으로 시작하여 잠으로 끝내야 하는 이 졸리는 인생에서는
월세 삼만 원을 더 내야 꿈꿀 수 있다
이 도시 변두리에서 마지막 생존전략은
단지 꿈꾸는 것이지만
꿈을 사기가 그리 여의치 않았다
남의 꿈을 빌려서라도 꿈꾸어야 했지만
그 방에는 <잠만 자실 분> 이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