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창녀와 어느 가장과 나 - 권상진

마루안 2019. 2. 22. 21:33



창녀와 어느 가장과 나 - 권상진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각자의 바닥에서 절망을 배우지만
바닥에도 격이란 게 있어
밑바닥이란 말이 시나브로 생겨났다


울음 없는 슬픔과 울어도 눈물이 없는 슬픔 눈물에 그늘이 없는 슬픔
질량이 다른 절망들은 마침내 가장 아래로 고여
밑바닥 인생의 발목은
늘 찰랑이는 슬픔에 잠긴다


어느 뒷골목에서 만났던 어린 창녀의 벗은 뒷등을 말없이 다독이거나
25층 옥상에서 금세 보았던 앞집 동갑내기 가장의 낯빛을
평온한 자세로 받아 안고 있는  따듯한 수평 앞에서
나는 행복의 혐의가 너무 짙다


살면서 한 번쯤은 만나게 될 것 같아서
바닥에 가만 손을 짚어 본다
깜깜한 그곳에 얼비친 낯익은 이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계절의 고비마다 고뇌에 찬 색감으로 돌아오는 낙화와 낙엽들을
바닥 저 밑에서 수습하는 뿌리처럼
창녀와 어느 가장과 나는
찰랑이는 슬픔을 지나 잠시 잊혀 두었던 본래의 그들과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바닥이라는 말 - 권상진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닿아 있었다
흉물스러운 바닥의 상징들로 각인된 팔과 이마는
오늘, 또 하나의 슬픈 계급을 얻는다


삶의 바닥에 무릎 꿇어 본 적이 있다
하루의 인생을 허탕 치고 돌아와
단단하고 냉랭한 바닥에 무릎을 주고 손을 짚으면
이런 슬픔에 어울리는 습기와 냄새 그리고
허공의 무게가 뒷등에서 자라곤 했다


심해의 물고기들처럼 납작해질 용기가 없다면
중력을 향해 솟구쳐야 한다
마른 땅을 움켜쥐고도 몇 번을 다시 살아내는 나무처럼
시든 무릎을 세우면서
사람의 가장 슬픈 자세를 풀고 있는
나도, 이제 바닥이라는 말을 알아들을 나이


달력은 벽에서 전등은 천정에서 화분은 베란다에서
저마다의 자세로 각자의 바닥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은
단단한 계단의 다른 이름이 된다






# 이처럼 바닥을 아름답게(?) 묘사한 시가 있었을까. 마치 보랏빛 슬픔과 연둣빛 희망이 교차하는 느낌이다. 왜 시를 읽으면서 이 두 색깔을 떠올렸을까. 시 쓰는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시인의 맑은 눈이 보이는 듯하다. 이 시는 밑바닥까지  떨어져본 사람이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따금 아래로 내려가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