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력시장 - 성백술

마루안 2019. 2. 12. 22:57



인력시장 - 성백술



간다 몸 팔러 간다 염병할 것
이른 아침 영등포 역전 용역회사 인력시장
오늘도 하빠리 인생 일당 잡부들 모여
주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엊그제는 연립주택 공사장에 혼자 팔려가
종일 땅을 파느라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어제는 지하 이층 건축현장 정화조 속의
물먹은 잡목과 거푸집을 끌어내느라
새참도 못먹고 생땀을 흘렸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거리가 떨어지려나
기술이라도 있어야 높은 일당을 받지
잡부 주제에 힘든 일 궂은일 가릴 것도 없다
내일 올지 모레 올지 모르는 장마 예보에
그나마 일감이 없어 반 넘게 돌아서는 판에
이 양반아 아침부터 재수없게 그런 전화
하는 게 아녀 주문을 기다리던 소개 반장은
전화통이 부서져라 수화기를 내던진다
속이야 편하지만 말이 좋아 건설 노동자지
뼛골 빠지는 이 길로 쭉 빠지려면
노가다 십년은 해야 겨우 십장이 되는
막노동판 일당잡부는 오래 할 일이 못된다
남들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해서 기피한다는
3D 업종 중의 하나
강도 센 노동에 하루 일당 받아봤자
소개비 떼이고 술 한잔 걸치면 남는 게 없어
어쩌다 고스톱판이나 계집질이라도 한번 하면
공수래공수거로 남을 노가다 인생
한밑천 잡을 때까지만 참아보는 거야
막다른 인생의 벼량에 배수진을 치고
이른 아침 영등포 역전 인력시장에 나와
오늘도 몸을 판다 젊은 인생을 판다



*시집, 복숭아나무를 심다, 시와에세이








지상의 방 한 칸 - 성백술



구속 기소된 황제
대재벌그룹 회장이 한 평 독방에 갇혀
수백억 비자금 조성과 용처에 관한 수사를 받는다고
TV이며 신문에서 야단밥석을 떤다
세계 글로벌 경영에서 차질이 불가피하고
한국 경제에 위기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는데


그 극한대의 한 끄트머리쯤
나도 한 평 독방에서 살아본 적 있다
돈 안 되는 시골 농사 작파하고
무작정 상경하여 맨땅에 헤딩하듯
구치소 독방 같은, 공단 주변의 벌집 같은
월세 십육만 원의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 있다


고시원의 한 평 독방이란
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
짐승을 사육하는 우리처럼 단순해서
다리를 뻗고 몸을 누이면
아득한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어두운 관 속처럼, 무덤 속처럼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하다


극과 극은 통한다
고시원이라고 고시생들만 있는 건 아니다
송곳 하나 꽂을 땅 없는 서울
풍찬노숙의 객지에서
그래도 비바람 눈보라 피할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아픈 몸 기대어 누일 수 있는
지상의 방 한 칸 있다는 것은





시인의 말


시인은 이슬을 먹고 살아야 한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지독한 외로움, 지독한 그리움의 생채기에서 흘러내리는 그 투명한 수액을.
나의 시는 몇 개의 중독으로 이루어졌다. 알코올중독, 니코틴중독, 애정 결핍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의 싸움.
내 시는 그 몇 가지의 중독이 남긴 결과물 즉 배설물들이다.
내 죽어 몇 개의 사리는 남기지 못할망정 여기 이렇게 살았다는 영역 표시를 해보는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첫 시집을 내면서 마음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건 나의 깊은 중독증으로 인한 설사를 너무도 많이 한 탓이다.
더럽고 치사한 이 세상을 갈아엎지도, 뒤집지도 못한 탓이다.
이제는 가슴속의 새들을 꺼내어 하늘 높이 날려 보내려한다. 부디 높고 멀리 비상하여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노래 해다오.
사랑과 평화의 새가 되어 아름다운 노래를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