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간 그것도 너의 운명 - 이진명

마루안 2018. 12. 21. 21:59

 

 

시간 그것도 너의 운명 - 이진명

 

 

내가 너를 등지니 시간

너는 홀로 가는구나

앞만 보고

가여운 시간이여

오만하였지

그렇게 앞만 보고 가다가

발밑 구렁텅이에 빠지면 어쩌리

뒤에 어느 못된 놈

낚아채면 어쩌리

끌려갈 것인가 오물 뒤집어쓸 것인가

낮과 밤

그렇게 얼굴을 바꿔 똑딱거리더니

종잡지 못하게 하더니

시간 그것도 너의 운명

차라리 어느 못된 놈

싯누런 웃음 갈퀴에

세차게 후려쳐지는 것

너는 너의 운명에 맞게 가라

시간 내가 너를 등지니

앞으로 똑바로 뒤돌아보지 말고 서지도 말고

어느 공들임도 너만 못하랴

그러나 그 무슨 공들임도 너보다 못하기도 하다는 것을

내 또 아느니

 

 

*시집,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문학과지성

 

 

 

 

 

 

쉰 냄새 - 이진명

 

 

쉰 냄새는

지나친 냄새

모든 익은 것들이 이상해질 때는

쉰 냄새가 난다

분명 알맞게 익어서

처음에는 향기로웠을 그것이 쉬는 데는

수십 년 만의 이상 기온

섭씨 삼십팔, 구 도의 장마철 찌는 더위 한낮으로 금방이다

알맞게 익었던 그것이 향기로웠던 그것이

한낮 잠깐 사이

쉰다는 것은 슬픈 일

이상 기온뿐이 아닌 이상 정황 이상 심리 속에서일지라도

쉽게 쉰 냄새 피우지 않으려면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맞게 잘 익은 다음에도

소금을 더

물기를 아주 싹

쉰 냄새는

지나친 냄새

모든 익은 것들이 익은 그 다음에도

어떻게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이상 기온도 탓은 탓이지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

무엇을 속에 계속 넣고 있지 말고 비우기를

자리를 고집하지 말고 구멍 숭숭한 허한 곳으로 나가 앉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