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쓸쓸한 가위 - 박정원
마루안
2018. 12. 19. 22:56
쓸쓸한 가위 - 박정원
한파를 견디고 있는 나무에게
전지가위를 댄다
잘리는 나뭇가지의 외마디소리에
왔던 햇볕도 오그라든다
부드러운 나무는 휘어지며 잘리고
거친 나무는 부러지면서 잘린다
내 몸속의 곁가지나 잔가지를 누가 잘랐나
다시 와서 손을 봐주면 안될까
곤고한 몸을 지탱하느라 애쓴 다리는 말고
지쳔명을 넘기느라 희끗희끗해진 머리칼도 말고
엊그저께 뽑은 사랑니 같은 것
가시 돋친 혀뿌리 꽃을 위장한 눈물뿌리
싹독 도려낼 순 없을까
가시나무는 가시째 잘리고
꽃부터 피는 나무는 꽃잎째로 잘리는데
왜 성급한 내 몸속의 가시나 꽃은 잘라내지 못했을까
누굴까 나를 제대로 솎아내지 못한 가위는
*시집, 고드름, 시평사
그리운 별 - 박정원
어금니가 흔들리자
김치 한 잎도 고무줄이네
삼십육년 전에 지은 정부종합청사처럼
부르트고 갈라진 겨드랑이
어디서부터 샐까
막 담근 겉절이 같은 후배 대여섯
오늘자로 떠난 사람들 의자에
햇빛처럼 앉아 있네
며칠 후면 헤어질 내 어금니와 어찌 견주겠나
임플란트를 한들 이 이쁜 후배들만 하겠는가
별 하나 지면 별 하나 뜨고
별 하나 뜨면 별 하나 지고
별 하나에 꼭 다른 별 하나
별 하나 뽑아버리자
온 우주가 흔들렸다
# 박정원 시인은 1954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98년 <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은 피다>, <고드름>, <뼈 없는 뼈>, <꽃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