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거짓말 - 김요일

마루안 2018. 12. 13. 21:53



거짓말 - 김요일



내가 사랑을 한다면, 그건 거짓말
산지 직송 능금보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간 거짓말이 달려 있겠지


아아, 내가 푸르뎅뎅한 연애시를 쓴다면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시큼한 당신 냄새 맡을 수 있다면
독한 담배 연기 내뿜으며 한 계절, 또 한 계절 취해 갈 수 있다면
마주 붙은 배꼽엔 하나 둘 하얀 수련꽃 피어나겠지


당신은 빛나지 않는 별과 달
내가 피워 낸 모든 꽃의 무덤


아아, 당신을 위해 평생을 울 수 있다면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
그건 다음 생에서나 가능한 일


아아, 생 앞의 거짓말들



*시집, 애초의 당신, 민음사








뿐, - 김요일



바람이 꽃잎을 흔들고
흔들린 꽃잎은 상처를 흔들고
마음을 흔든다


흔들린 마음 하나
더할 수 없이 위중해진
단단한 슬픔이 되어
목구멍을 막는다


그래
그냥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고 못 박아 두자
꽃그늘 하나 드리우지 못하는 가여운 나무의,
그 깡마른 그림자의,
말라 가는 비애쯤이라 해 두자


운명적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지
점등 별의 망루에 올라 잠시 스위치를 켰을 뿐


그래, 그래
그냥
쓸쓸한 별의 벼랑 끝에서 잠시
아찔, 했을 뿐
황홀, 했을 뿐


뿐,






# 김요일 시인은 1965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교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했다. 1990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으로 <붉은 기호등>, <애초의 당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