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잠 - 이승희

마루안 2018. 11. 30. 21:28



잠 - 이승희



어디까지 잊어야 기억이 되는지
어디까지 기억해야 잊을 수 있는지
묻지 못하는
예쁜 뼈들이
아직 생기지 않은 얼굴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들은 옷일 짓고 있습니다
능숙하게 머리를 지우고
손을 지우고 손가락을 지우고 나면
심장이 생겨나는 옷
먼 곳으로만 도는 행성처럼
발가락이 돋아나는 옷
저녁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시간은 구부러진 채 녹이 슬어
사방으로 쏟아지는 화살 같습니다
바늘로 새긴 이름표를 받아 들고
아기들은 떠났습니다
천 년쯤 걸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돌아서 천 년쯤 되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어디쯤에 귀를 대고 울어야 하느냐고
묻지 못하는
예쁜 뼈들이
호명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차가운 별이 반짝 빛날 때
그렇게 이름 하나씩 불러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똑같은 이름만 부르고 있습니다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문예중앙








결 - 이승희
 


오랜 후회 쪽으로
자꾸만 살이 닿을 때
한 집 건너오는 동안 몸이 반쯤 지워진
노래들
따뜻했다
어떤 맹세는
어깨 위 물방울처럼 이해되었고
어떤 말은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 손을 놓아도 되는 거리가 있는가

 
이 모든 결의 안쪽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
오늘은 어제 도망치고 싶었던 내일이
아니었다고
상한 걸음마다 바람 불었다
내가 당신을 견디고
당신이 나를 견디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잊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사랑의 방식으로
우리는 결에 이르기도 한다
익명의 여행자처럼
어긋남의 골목을 지나
지워진 입들이 폭우로 내리는 밤은
어두웠으므로


조금만 덜 어긋났으면
나는 당신의 결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 한 글자로 된 제목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은유를 감지한다. 나는 두 시를 연달아 읽으며 잠과 결이라는 제목을 합쳐 잠결이라 생각한다. 헛다리 짚었더라도 내 맘대로다. 이 시인의 시가 유독 내면 깊은 곳에서 길러 올리는 문장들이 많은데 때론 그 울림이 울음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하긴 울림이나 울음이나 시 읽는 동안에는 한통속으로 생각 되니 잠결인듯 그 떨림을 못 느낄 것인가. 긴 여운이 남는 시다. 여러 번 읽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