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상여를 타고 - 김점용
앙상한 상여를 타고 - 김점용
-꿈 18
흰옷을 입은 할머니들이 사람들의 묘를 파헤친다 이장(移葬)을 위해서다 내 키 두 배 정도 높이의 거대한 돌무덤이 여럿 보인다 돌무덤 중간쯤에 이장한 시신이 있다 살점이 으깨어져 나올까 봐 돌 틈 사이마다 흰 회칠을 발라놓았다 내가 높은 가마를 타고 돌무덤 사이를 지나간다 회칠한 부분이 내 발에 닿는다 난 질겁을 하고 비명을 지른다 연기가 자욱하다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난다 내가 탄 가마는 종이꽃이 다 떨어진, 앙상한 상여다
부음이 올까,
시골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내가 흰옷을 입었더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흰옷을 입고 가마를 타면 죽는 꿈이고
상여를 보면 좋다고 하면서
아버지 산소에 한번 다녀가라고 하셨다
*시집,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문학과지성
허공 길 - 김점용
-꿈 64
커다란 벽화를 그린다 다른 누군가는 반대쪽에서 그린다 그는 어린 시절의 나다 구름이 지나가면서 내 그림을 지운다 내 짚신이 반대쪽의 그림을 지운다 내가 다른 귀퉁이에서 그리기 시작하자 아이도 반대편에서 붓을 놀린다 거대한 바퀴, 윤회를 그리고 있단다 그제야 걸개그림은 원래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벽이 허공에 붕 떠 있고 아래쪽을 보니 줄사다리가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왔는가
눈뜰 수 없는 유년의 눈부신 물결인가
몇 줄 경전의 달콤함인가
야곱의 사다리는 말씀에 닿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올랐는가
세상은 모두 저 아래 호수에 잠들었는데
때론 수정처럼 맑은 얼음 기둥을 타고
아득한 공중에 발 딛고 서서
낚시를 하다가 그대로 얼어붙는 꿈
그때 누군가 내 꿈속에 들어와 울고 가는 꿈
젖은 베개에 누워 바라보는 어둑한 천장
여기가 어딘가
이게 정말 바닥인가
이렇게 둥둥 떠서 어디로 가는가
# 김점용 시인은 1965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서울시립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메롱메롱 은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