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픔을 덧칠한 슬픔에게 - 김도연

마루안 2018. 11. 12. 19:17



픔을 덧칠한 슬픔에게 - 김도연



온몸으로 꽃을 피우다
와르르 억장 무너지는 슬픔의 본성 때문에
먼 산을 향해 입술만 달싹거린다 모두들
이렇게 머물러 있는 이곳
여기는
묵정밭을 닮아 천백 일 일하고도
하루가 지나도록 밭을 갈아야 허공에 헛손질하는 날들을
떠나보낼 수 있다고


깊은 한숨에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찾아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다


별들은 서로의 호칭을 부르다가 서로를 버텨내겠지


밀어내는 슬픔과 밀려오는 슬픔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온전히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지
떠나갈 것들 앞에 햇살은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질겅질겅
슬픔을 씹어대고 있다


겨울과 가을이 엎치락뒤치락 천일의 시간을 수놓고 있는데
기억을 잊은 파랑새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슬픔 하나를 부리에 물고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지금 당신은
그 먼 곳에서 번쩍
두 손 흔들며 나를 부르시겠죠?



*시집, 엄마를 베꼈다, 문학의전당








수취인불명 - 김도연



오독은 얼마나 깜감함인지


해거름 길게 늘어뜨리다가 땅거미 지우면
메두사의 검은 모가지를 땅바닥까지 떨구고
출구를 찾아 헤매는
길 없는 저녁


새털처럼 가벼운 비가 장레식장을 비껴간다
사선으로 긋는 빗줄기
가야 할 길을 찾아 운명처럼 떠나는 우산 밖의 빗방울들
젖은 꽃잎에 차가운 볼을 부빈다
가려운 눈을 비비다가
대책 없이 이정표를 스쳐가 잘못 지나치고
불안한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최대한
이마를 낮춘다


색깔 없는 흑백의 목소리로 우우우
특별한 것도 없는 이 생의 문턱에 와서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적막 속에 사생아를 낳고
절망적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다


죽음도 불사할 듯 팔랑팔랑
나비 날개로 날아가다가
내가 죽어도 슬픔은 결코 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꿈처럼 견뎌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