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는 있다 - 변홍철
파랑새는 있다 - 변홍철
그 친구 꿈이 배추장수라는 거
알지요?
깍쟁이 아줌마랑 댓거리 한판 하고
산동네 함석철문 쭈그린 노인네
서너 포기 배추 사 슬쩍 놓고 도망치는
동네 어귀 과부댁 막술집 있어
단골 삼아 저물녘 한잔씩 걸치고
정분이 나면 어떠랴, 취해 자빠지면
리어카에 싣고 가줄 착한 마누라
그게
내 아우 꿈이라는 거
벌써 알지요?
그러다 그러다 행여 오르막길
숨이 차거든, 세수씨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시치미 뚜욱 메고 그 친구랑 노래라도 부르시구려
그 노래 듣고서
어둔길 비탈길 가까스로 매달려 사는 우리 형제들
술국이라도 얻어먹을 속셈으로 우루루
배춧단이든 시름이든 들쳐업을 테니
아, 사실은
제수씨가 더 잘 알지요
그 왜, 먼동이 틀 때
여린 배추이파리 푸른 서리를 털면
후두둑 날아오르는
파랑새는 있다는 것
*시집,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 한티재
젖은 외투를 어루만지다 - 변홍철
비가 오네, 중얼거리는데
아내가 반쯤 자불며 하는 말,
엊저녁 비 맞고 들어온 거 기억 안 나요?
흠뻑 젖어 들어와 놓구선
더듬더듬 불을 켜자
문득 빗소리 멀어지고
바닥에 널부러진 외투에
아, 아직 마르지 않은
검은 물기!
입동(立冬) 지나 차가운 빗속을 너는
어디 혼자 헤매다 왔느냐
취한 몸 먼저 보내고
차라리 혼자 비틀대다 쓰러졌느냐
나무들 발등마다 찬 비에 베어
남은 이파리 몇
고개 저으며 떨어지는데
버리고 온 슬픔이 자꾸 안쓰러워
젖은 외투만 어루만지다
울먹이는 외투만 어루만지다
# 변홍철 시인은 196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았다.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하며 동인지 <저인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