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한 고전주의자의 독백 - 홍신선

마루안 2018. 10. 27. 19:16

 

 

한 고전주의자의 독백 - 홍신선


밭두둑에 심은 작두콩 가녀린 넝쿨이 쥐엄 쥔 손을 펴 새벽 허공을 끌어당긴다.
그리곤 버팀대 놔두고 굳이
제 옆 무녀리 넝쿨의 어깨를 짓누르고 한 발짝 더 올라선다.
남의 야윈 등짝을 사이코패스처럼 찍어 누른
그 손발을 나는 슬그머니 치워 준다.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자유가 아니지. 남의 파리한 등줄기 찍어 누른 게 이념은 아니지.

괴춤을 부여잡고 공중변소 앞인 듯
긴 줄 선 방동사니들이 어쩌랴 바로 그런 게 삶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생각 비켜 주는
이 아침을
나는 입안에 몇 마디 물었다 뱉는다.

허공을 끌어내린 쥐엄질하던 어린 손
이번엔 햇살 속을 더 기막히게 헤집어 까드는데······

 

 

*시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출판그룹파란

 

 

 

 

 

 

상강 - 홍신선


석축 틈이 불편해도 밤새 두 다리 오그린 채 틀어박혀
그 새끼 고양이는 운다. 울다가 잠시 생각하고
생각하다 다시 운다.
미아가 되어 이건 아니다 아니다 우는 걸까
어미는 어느 도랑 속 이미 구겨진 휴지처럼
횡사해 처박힌 건 아닐까
일체의 삶이 그런 거라지만
저도 이 낯선 세상에 들렀으면 새끼 품고
목덜미와 낯바닥이라도 샅샅이 핥아 주고 싶었는데
결국 누군가 거들떠보지도 아는 척도 않는
이 차가운 돌 틈에서 어리둥절 혼자 울다
사위어 갈 마련인가
갓 난 그의 작은 몸뚱이는 부슬비 뿌리다 말다
뿌리다 말다 하는 상강 날 매지구름 같다.
이건 아니다 아니다 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울다
막상 그 어린 게 목숨 반납하고 딴 세상으로 가뭇없이 돌아갔는지
오늘은 울음소리 지워진 내 쪽잠 머리가 되우 고요하다
아니 일대가 휑뎅그렁 황막하다.
이 전역이 참 이건 아닌 세상이
바로 그를 공모해 살처분한 공범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