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 도둑 - 김연종

마루안 2018. 10. 17. 22:58



눈물 도둑 - 김연종



단 한 번도 꿈꾸지 못한 혁명 같은 은유가 내 눈 속에 흐르지만
눈물 주를 벗 삼아 눈물의 고갈에 대해 말하지 않으리
내 눈물을 훔쳐 한낱 위안으로 삼은 네가 지금쯤 슬픔에 잠겨 펑펑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다녀간 후로
눈이 각박하다
눈썰미도 사라지고 안목의 잣대도 희미해졌다


안구 건조증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변심한 애인의 유두처럼
쭈글거린다


말라버린 세상의 눈에
인공누액을 넣는다


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누액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미끄러운 바위에 착지하지 못한 빗방울처럼 너를 향해 흐르는 관성 멈출 수 없는 건
아직도 애써 참아야 할 짜디 짠 눈물이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지혜출판








조루증을 앓고 있는 조루바 - 김연종



그는 망상의 열혈남이다
24 시간 아내를 감시하면서도
모텔의 가려진 번호판을 기웃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잠자리에서 쫓겨난 조루증이고
세상에 등을 돌린 의처증이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불멸의 우상이었지만
이제 늙고 주름진 사타구니의 신용불량자이다
한 때 환상이거나 환멸이었을
미스터 굿바도
입술에 달라붙은 아이스크림처럼 흐물거리고
엄지와 검지 사이 바둑알처럼 부드럽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바둑알과 못에 박힌 예수와 또 무엇일까 상상하다가
마침내 토끼보다 민첩해졌으며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분열된 각도로 바라볼 때
세상은 관음증처럼 관대하다
편집증의 틈새에 비친
환상과 환멸 사이의 간극이
매우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