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금니 삽니다 - 황구하

마루안 2018. 10. 16. 22:03



금니 삽니다 - 황구하



사거리 구두수선집 앞, 누런 글씨로 세워진 간판을 본다


어느 절이었던가
소가죽 고아 만든 갓풀에 금가루 개어 썼다는
금니(金泥)가 문득 생각났는데


금니 필요 없다 말짱 다 헛것인 겨 화장허고 나믄 그거 하나 남아 그것도 이놈 저놈 쌈 난다는디, 시상이나 이거 아니믄 내가 삼시 세끼 어찌 챙기겄냐, 아이구 그르케 깨적거리지 말구 어여 푹푹 먹어라, 별거 있간디 사는 동안 잘 먹고 잘 싸고 가는 날 잠지듯이 잘 가믄 그게 젤루 큰 복인 겨, 금이 최고냐 은이 최고냐 아무리 덜그럭거려도 내 입맛에 맞으믄 그게 금니여


살아 생전 우리 엄마
날마다 큰 절 부처님 받들듯 아끼던 틀니
아가, 시집 들어 열흘씩이나 볼일을 못 봤다며
인자는 좀 잘 먹고 잘 싸냐


고향 집 들를 때마다
빛바랜 천수경 독경 소리 생생하게 묻어 있는
슬레이트 지붕 졸가의 금니가 되어
넌지시 채근을 하시는데


금니 삽니다


기우뚱 닳은 구두 굽을 갈며
굽이굽이 메아이치는 한 말씀을 읽는다



*황구하 시집, 화명, 시와에세이








꽃놀이패 - 황구하



나도 인제는 진짜 늙었능갑네, 마실서 버스 대절해 꽃기겅 간다카만 하메 맴이 저만치 앞장서서 촐랑촐랑 가여 억시기 좋아 퍼뜩 모양내고 따라나서여 근데 말이라 꽃놀이 가만 먹고 시운 거 돌아댕기믄서 입맛대로 골라 먹는 건 덤인데 맴만 삼삼해여 말짱 헛일 같아여 음석도 텁터부리항기 입에 싸굽기만 하고 걷는 것도 신찮고 백지 따라가 놓고 버스 딱 서믄 사단 나여


콧바람 좋아라 용심 써도 쌔기 걸을 수가 없응께 저짜 어디 한 기티 고목 아래 돌삐거치 쪼골씨고 앉아가이고 모간지 빼고 먼 산 바라보미 새소리나 들어여 다른 사람들 올 때가정 그슥하이 바라꼬 있자이 참 기맥히여 남들 거북시럽꾸로 뭐하러 나서여 나서기는 옛날 같으믄 발뒤꾸머리 땅 닿을 새도 없이 훠이훠이 매화 건너 복숭꽃 바알간 꽃맹아리 건너 하얀 꽃 벌떼맹그로 오미가미 꽃기겅 사람 기겅 빠대고 안 댕깄겠나


집 한 채 짓는 인생살이 자식들 그렁그렁하고 영감 간지 수수 년 꽃 따라 사람 따라 시상 기겅 한판 잘 힌기여 노인이 백지 노인이가 지 몸도 맴도 옹골지게 지탱 몬하믄 끝장인 기라 삭신 내리앉고 몸띠는 쑤시고 인제는 귀도 눈도 어둔 지 맥 짚어 쪼메참 씨다듬을 줄도 알아야는디 남사시럽데이 나 많은 할마시가 우쩨다가 노망이 나도 단디 났제 뭔 놈의 맴이 아직도 꽃놀이패맹그로 이키나 나부대는지, 아이구 춘삼월 호시절 다 어디로 갔노





# 황구하 시인은 충남 금산 출생으로 영남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물에 뜬 달>이 있고 <화명>은 두 번째 시집이다. 현재 문학무크 <시에티카> 편집장이다. 남자 이름처럼 들리나 여성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