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늙은 남자가 사는 방식 - 박세현
마루안
2018. 10. 14. 19:15
늙은 남자가 사는 방식 - 박세현
학문과 항문이 길항하듯
(그럴 듯 한데 뜻은 나도 모르겠다
그럴 듯 하다는 것은 그래서 항상 수상하더라)
눈 앞에 밀려오는 안목항의 파도소리도 그렇다
나는 그대를 믿지 않지만 그대의 죽음은 믿는다
부고도 영정도 발인도 천도재도 믿는다
열심히 남긴 그대의 언어는 믿지 않는다
언어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더라
좌회전 깜빡이 넣고 깜빡거리다가
몇 번 깜빡거렸는지 까먹고 직진해버리는
택시처럼 그런 것이더라 여름파도가
저렇게 싱싱하다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한번 더 놀란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안아 주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어
매일 아침 멀리 나를 가져다 버린다
그게 늙은 남자가 사는 방식이다
*시집, 아무것도 아닌 남자, 오비올프레스
혼밥 - 박세현
열두 시
정오 시보가 울렸다 깜짝 놀란 듯
어딘가로 출발해야 할 시간인데
혼자 점심을 먹고 있다
식탁 위 반찬을 적자면
생략하는 것이 좋겠으나 군소리처럼 몇 자
눈앞에 다가선 저 컴컴한 조명뿐인 야산이
오늘 나의 시장기를 돕는 반찬이다
데칠까 볶을까 바라만 보다가
한 숟갈 그득 봄밥을 들어올린다
이름부터 있어보이는 클라라 주미 강이 긁어놓은
봄 선율도 수저 위에서 흔들린다
이렇게 찰랑찰랑 살아있는 찰나찰나
수북한 혼밥에 놀라워서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