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성북역 - 강윤후
다시 성북역 - 강윤후
종착역에 다가갈수록 열차가 가벼워진다
차창마다 가을 햇살 눈부시게 부대껴 쩔렁거리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신문처럼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흘러버린 세월이나 게으르게 뒤적인다
서둘러 지나온 세상의 역들이 귓가에 바삭대고
출입문 위에 붙은 '수도권 전철 노선도'를
천천히 읽어가던 지친 음성, 청량리 회기
휘경 신이문 석계 그리고
성북,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그때처럼 나는 아무 대답 못 한 채
고개 돌려 창밖만 바라다본다
어느새 흑백 필름이 되어 스쳐가는 풍경들
나무들은 제 이름표를 떼어내며 스스로 어두워지고
객차는 벌써 텅텅 비어 간간이 울리는 기적 소리가
먼 기억까지 단숨에 되짚었다가 돌아오곤 하는데
대숲처럼 마음에 빽빽이 들어찬 세월 비우지 못해
나는 자꾸 무거워진다, 갈 곳 몰라서
떠밀리듯 살아온 날들이 나를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가, 성북
거기에 가면 기약 없는 내 기다림 아직
우두커니 남아 기다리는가
이제 열차는 종착역에 닿아 멎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내 기다림
거기서 또다시
시작되리라
믿는다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문학과지성
성북역 - 강윤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 한다
# 30 여년 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워낙 빠르게 변하는 시대라서 한 세대 전인데도 중생대의 화석을 본 느낌이라 할 정도로 아득한 풍경들이다. 지금은 사라진 성북역은 신촌역과 함께 내 청춘의 우울함이 묻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았을까. 이런 저런 이유로 경춘선이나 교외선을 타고 떠날 때가 많았다. 대성리, 강촌, 백마, 장흥,, 지금은 빛바랜 造花처럼 사라지거나 희미해지거나 했다. 어찌 보면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던 그 때가 좋았던가. 덜어낸 추억이 아련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