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월 - 최준
마루안
2018. 10. 6. 21:35
시월 - 최준
-춘천 14
거리의 새들은 어디다 노래를 숨겨놓고
오늘을 날개 접나 하루를 더
낡고 해진 청바지는 어느 옷걸이에 걸어두나
청춘을 범람하면서부터 벽이 된 산
세상의 중심이 누이의 젖가슴만 같은데
봄의 열병을 끝낸 병사들은 이제
부실한 숲이 되었다
가을이 오고
떠나면서 돌아보니 그 거리는 참말로 깊은 해연이었다
*3인 시집, 슬라브식 연애, 달아실
그리고 - 최준
-춘천 19
빛이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네 눈 속에서 눈이 사라질 때
너는 무얼 보고 있었나 작년처럼
의자에 먼저 와 앉아 기다리고 있던 봄, 그의 얼굴에
겨울의 흰 눈썹이 붙어 있었던가
눈이 사라지자 길이 열렸다
너는 봄과 마주앉자마자 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눈이 사라지자
길이 열리고, 벽이 생겼다고
벽의 반대편에서 넌 거울을 닦고 있었냐고
내가 물었다 막 돋아나기 시작한 푸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겨울에 떠난 심장들의 안부를
눈이 사라지자마자 방문한 봄의 불온한 저의를
눈이 사라지자 다시 태어나는 눈들
눈 속에 숨어 있다가 눈을 뜨는 눈들
모든 게 바깥에서 벽이 되는
흰자위뿐인 눈알들
길을 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꽃이라고 불러주면서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는
아, 여름 지나 가을까지는
올해도 너무 먼 길
# 내가 좋아하는 도시 춘천을 배경으로 한 시를 모은 시집이다. 강원도 정선이 낳은 세 시인 박정대, 전윤호, 최준의 3인 시집이다. 다소 덜 알려진 최준 시인의 시를 올린다. 나는 늘 이렇게 뒷줄에 눈길이 간다. 쌉싸름한 미련이 어른거리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