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의 부음을 받다 - 이운진
마루안
2018. 10. 1. 19:03
별의 부음을 받다 - 이운진
불혹을 넘고 나니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다고
이미 너무 둥글어졌다고
수천 살 수억 살 먹은 별들에게 말을 하고
목숨 하나쯤은 거뜬히 받아 줄 밤하늘에서
마지막 길을 잃었으면
우주의 먼 구석인 허공에게 말을 하다가
신의 정원에서 홀로 피었다 지는 풀꽃처럼
소박한 이름으로 사는 하소연을
제일 빛나는 별빛에게 하려던 중이었는데,
그 큰 별은
무한의 너머로 가지 않고
이 지상의 어둠 속으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가장 현명한 슬픔 하나를 이해하는 중이다
*시집,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천년의시작
북극 여행자 - 이운진
늘 그래왔듯이
몇 개의 강과 몇 개의 구름으로는 나를 달랠 수가 없었어
한 계절 한 계절씩
다른 옷을 갈아입는 일로는 나를 바꿀 수 없었어
눈을 감으면 멀리서
작은 짐승이 혼자 눈을 밟고 가는 소리
보름달이 뜨면
길 잃은 늑대의 휘파람 소리
사람의 말을 배우지 않은 북쪽 숲의 바람 소리가 나를 불러서
새들의 하늘 지도를 빌려
열흘 낮 열흘 밤
이미 그곳에 있는 나에게로 갔어
나는 혼자일 때 가장 덜 외로웠으니
나는 사랑이라는 발음이 아주 서툴렀으니
광활한 얼음벌판에서
풋사과 빛 오로라처럼 너울거리고 싶었어
별에서 슬픔이 날아와 내게 안길 때
무엇에서 시작되든 슬픔으로 끝나는 나의 시를
다시는 고치러 돌아가지 않기로 했어
내가 반성할 것이라고는 슬픔뿐이고
그 슬픔마저 없으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될 테니까
그리고 기억이 나를 조금씩 속여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