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버지 별명은 생쥐 - 이설야

마루안 2018. 9. 11. 22:21



아버지 별명은 생쥐 - 이설야



동인천 건달이었다.


밤마다 카바레 불빛 속을 헤매다가 숭의동 쪽방 부엌문을 열고 들어와 도둑고양이처럼 고등어 가시를 발라 먹었다. 전도관에서는 날마다 부흥회가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쓰러져 별나라의 소리를 내뱉었다. 모두가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천국이 저마다 달라서 이상했다.


내 귓속에서는 쥐 오줌이 새는 것같이 간지럽고 부럽기도 한, 먼 나라의 이야기들.


그들은 매일같이 모여 울다가 웃다가 어딘가를 다녀오는 것 같았다. 그것뿐이었다. 천국은 점점 더 가난해졌고, 아무도 그 동네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골목 끝에 간신히 매달려 삐걱이던 집. 천장에서 쥐들의 발소리가 천둥소리를 흉내 내면, 아버진 점점 더 거칠어졌다.


천국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의 입에서는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연기 속에서 배고픈 쥐들이 내 얼굴을 조금씩 갉아 먹었다. 쥐들의 이빨 자국이 지나간 내 얼굴이 날마다 종소리와 함께 시궁창 속으로 빠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








은하카바레 - 이설야



은하카바레 뒷문에서 아버지가 나왔다
나는 여인숙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달래느라
카바레에다 밤을 억지로 구겨넣었던 것


거미줄로 목을 감은 전봇대 불빛을
모으느라 눈이 캄캄해지는 밤
아버지는 불빛을 여기저기 붙이고 있었다
그 불빛에 찔려 오랫동안 아무것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백구두 소리가 부엌문을 열면
내 몸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려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해바라기 씨앗처럼 불어나는
새까만 음악 속으로 자꾸만 숨어 들어갔다
그 속에선 슬픔을 북북 찢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면 깊은 연못이
연못 속에는 나와 얼굴이 같은 소녀들이 수장되어 있었다





# 이설야 시인은 1968년 인천 출생으로 방송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문과 석사와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