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진 바다에 가서 - 정일남
마루안
2018. 9. 9. 19:37
당진 바다에 가서 - 정일남
국도에서 벗어나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니
흙냄새가 확 안겨온다
저녁이 임박해 참새들이 숙박소를 찾아간다
나도 일박(一泊)이 절실한 때
바다로 가는 길은 춥다
홀로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을 만났다
몸이 노쇠했지만 집착이 세밀해 보였다
터진 그물을 엮는 손길이 기계적이다
어르신 건강하시네요
그래요, 우린 병들어 죽는 게 아니고
바다가 덥석 물어가서 죽는 거지
불시에 사자로 변해 덤비는 녀석이지
그래도 녀석을 달랠 수밖에 없는 거요
노인은 아들을 삼킨 수평선에 잠시 눈이 가 있다
그물에 걸린 고기보다 빠져나간 세월이 많았다
날개 없는 폐선이 방치되어 있는 곳
해안선을 따라 걸어오는 저녁이 붉다
바다는 나를 삼킬 듯 으르렁거리며
웬 녀석이냐는 듯 훑어본다
짐승의 밥이 되지 않으려고
아니 되려 바다로부터 밥을 구하려고
사나운 짐승을 바라보며 노인은
터진 옆구리를 깁고 있었다
*시집, 봄들에서, 푸른사상
김삿갓 묘에서 - 정일남
잔디가 허술한 묘는 관절이 아팠다
망초꽃은 쉰밥으로 마르고
비석의 얼룩이 세월의 얼굴인 듯
나를 유심히 훑어보며 어느 땅에서 온
무슨 계열의 혈족인지를 묻는다
죄라고 생각한 생애가 해를 가리고
몸에 밴 행려는 구름이 앞장서 길을 터주게 했겠다
야립(野笠)과 막대가 없었다면 외로웠을 행장
풍자와 골계를 뿌린 연유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허기진 산이 여러 겹이다
시간을 재며 흐르는 물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
독대하지 못한 시대를 읽으니 늑골이 결린다
달이 머물다 간 숲엔 산비둘기 허기지고
나비가 저승 냄새 피우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