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 서상만
잃어버린 시간 - 서상만
달빛 갈라놓은 분월포 노두길
성근 왕대 울타리 안 병든 아내 위해
당신 몸이야 아낌없이 허물던, 막막한
아버지의 부복(俯伏)뿐인 집 한 채
해질 무렵, 멀리 영일만 노을이
울금빛 물결로 넘실넘실
어머니 살 속에 파고들고
아버지 가슴에 피눈물이 고이던
오월 초이레, 낡은 문설주를 흔들며
저승 돌개바람이 어머니를 빼앗아갔다
그 아스라한 적막의 빈집을 아버지는
길을 넓히라고 마을에 내주고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훤히 뚫린 길
덧없이 떠나가신 내 어머니 아버지의
황혼 사랑과 이별
무시로 드나든 겨울 바닷바람도
조용히 잦아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찾아간다
아버지와 꼭 닮은 나의 길
*서상만 시집, 분월포, 황금알
관심송(觀心頌) - 서상만
마른 잎 흩날리면
나도 겨울새처럼 설산이 그립다
하얀 허공에
얼음집을 짓고
하루 종일 울음소리 가둔 채
어쩌다 구름이나 만나면
그 관심(觀心)에 나를 묶어 별빛도 지우리
백야의 슬하는
적막도 차갑고 눈물도 무거워
내 상처 입은 날개는 떨고 있다
거긴 내 돌아갈 처소
바람 소리 무성한 무소헌(無所軒)
영혼을 덮어줄
신(神)들의 설법도 무색한 나락
나는 죽음과 합심하여
만리 허공 별무리에 고독을 뿌리며
생을 귀납(歸納)하리
인생에서 운회輪回란, 글쎄
가다 오다 막막하면
그 아닌 어디로 또 떠나야 하는
영원한 불귀객이 아닐지
돌아보니 이생의 내 삶도
실은 욕)欲)이 다 욕(辱) 되었다
뭘 보고 살았는지 한 것이 없다
그 과보 아직 남았다면
삼도천 길섶에 가마솥을 걸어 놓고
뜨끈한 시래깃국이라도 끓여
중음을 헤매는 배고픈 망자들에
허기라도 달래주리
갈 때 가더라도, 아깝다
아직은 걸을만한 새벽 삼거리
울어대는 까치마저 웬 피울음인지
*시인의 말
분월시서(芬月詩序)
나의 출생 호미곶,
분월포(芬月浦) 앞바다는
내 삶의 막막함이었다
그 막막함을 이기려
여태 詩로 살았다
그런 시 앞에서
왜, 난 또 막막해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