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풍습 - 김창균
오래된 풍습 - 김창균
한곳을 오래 쳐다보면 눈이 머는지
마당 귀퉁이 오래된 집 우물은
눈먼 봉사처럼 허당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이 먹던
그 우물엔 바람이며 바람이 몰고 온
빈 비닐봉지며 나뭇잎이 들어와 살고
거기 한켠을 얻어 하늘도 산다.
그 속 깊은 우물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대면
물이 말을 받아 우물 벽에다 메친다
어떤 날은 붉은 배를 까뒤집고 무당개구리 몇
수컷을 업은 채 흙탕물을 헤엄쳐 간다.
나는 문득 저것들 필시
서러운 무당의 자손일 거라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우물 속 절벽을 뛰어내려
스스로 무덤에 든 자들
그 오래된 우물 속
아랫배 불룩한 자손들 곁에서
나는 무슨 열병 앓는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자꾸 붉어지는데
또, 마을 초입 친구 집에선
몇 번째 내림굿을 한다.
*시집, 먼 북쪽, 세계사
백석과 함께 만주를 걷는다 - 김창균
나도 내 처도 그리고 어린 딸도
노을이 장엄하게 지는 심양의 저녁을 걷는다
뒤축 닳은 구두들이 길을 딛고 가고
사람들은 모르는 말들을 큰 소리로 주고받으며
우리 곁을 지나간다
그 장엄한 것들에 섞여 포도 몇 송이 사고
거스름돈을 찬찬히 챙겨 돌아 나오는 길
턱, 간신히 간신히만 밝은
가로등 아래 잠을 청하던 늙은 노숙자가
내 앞을 가로막는데 불쑥
오래전 내 할머니 냄새가 났다
이렇게 장엄하게 노을이 지고 지는데,
어느 한 시절 백석도 이 길을 걸으며
소수림왕과 광개토대왕을 생각했을 테고
또 국수를 먹었겠거니 생각하니
왠지 내 가슴에도
문득 무슨 뜨끈한 것들이 왔다 간다.
*자서
이 땅의 북쪽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북방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사투리를 배웠다
앞으로도 많은 세월
북방의 언어를 받아내며
그들과 그늘을 함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