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래된 풍습 - 김창균

마루안 2018. 9. 7. 21:49



오래된 풍습 - 김창균



한곳을 오래 쳐다보면 눈이 머는지

마당 귀퉁이 오래된 집 우물은

눈먼 봉사처럼 허당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이 먹던

그 우물엔 바람이며 바람이 몰고 온

빈 비닐봉지며 나뭇잎이 들어와 살고

거기 한켠을 얻어 하늘도 산다.

그 속 깊은 우물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대면

물이 말을 받아 우물 벽에다 메친다

어떤 날은 붉은 배를 까뒤집고 무당개구리 몇

수컷을 업은 채 흙탕물을 헤엄쳐 간다.

나는 문득 저것들 필시

서러운 무당의 자손일 거라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우물 속 절벽을 뛰어내려

스스로 무덤에 든 자들

그 오래된 우물 속

아랫배 불룩한 자손들 곁에서

나는 무슨 열병 앓는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자꾸 붉어지는데


또, 마을 초입 친구 집에선

몇 번째 내림굿을 한다.



*시집, 먼 북쪽, 세계사








백석과 함께 만주를 걷는다 - 김창균



나도 내 처도 그리고 어린 딸도

노을이 장엄하게 지는 심양의 저녁을 걷는다

뒤축 닳은 구두들이 길을 딛고 가고

사람들은 모르는 말들을 큰 소리로 주고받으며

우리 곁을 지나간다

그 장엄한 것들에 섞여 포도 몇 송이 사고

거스름돈을 찬찬히 챙겨 돌아 나오는 길

턱, 간신히 간신히만 밝은

가로등 아래 잠을 청하던 늙은 노숙자가

내 앞을 가로막는데 불쑥

오래전 내 할머니 냄새가 났다

이렇게 장엄하게 노을이 지고 지는데,

어느 한 시절 백석도 이 길을 걸으며

소수림왕과 광개토대왕을 생각했을 테고

또 국수를 먹었겠거니 생각하니

왠지 내 가슴에도

문득 무슨 뜨끈한 것들이 왔다 간다.





*자서


이 땅의 북쪽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북방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사투리를 배웠다

앞으로도 많은 세월

북방의 언어를 받아내며

그들과 그늘을 함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