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단골 - 문신
마루안
2018. 8. 27. 19:17
단골 - 문신
이발소 의자에 앉아 빗소리를 들었다
일흔의 이발사도 같이 듣는지
가위질 소리가 못내 예전만 못하였다
몸 낮춘 빗방울들이
일흔 살의 느린 선율 같아 때때로 사무쳤다
아무렴,
견줄 바 없도록 귀밑머리는 짧아지고
이발소 거울 속에서 한 생이
우기처럼
종일 흘러가고 있었다
턱 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
까닭을 물으니
귀에 빗물 고이는 날이 잦다고 하였다
아, 한 마리 초식동물이어라
조만간 이 우기를 혁명처럼 건너가겠구나
나는 이발의 표정까지도 차곡차곡
숫제,
여러 날 간곡해져버렸다
*문신 시집, 곁을 주는 일, 모악
곁은 주는 일 - 문신
횟집 주방장이 칼날을 밀어 넣고 흰 살을 한 점씩 발라내고 있다
무채 위에 흰 살이 한 점 얹히고 그 곁에 원래인 듯 흰 살 한 점이 또 얹힌다
곁을 주는 일이 이렇다 할 것이다
애초에 한 몸이었다가 홀연 등 떠밀린 것들
이만큼
살 부비고 싶어지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애인이여
우리 헤어져
둘이 되어도 좋을 일이다
생살 찢는 아픔을 견디며 살이 살을 부르는 그 간절함으로
저만치서 오히려
꽉 채우는
그
먼 가까이를 곁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시인의 말
여기 순정파들이 모얐다.
그들은 물비늘 같은 추파에도 배시시 웃어줄 줄 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야말로 실패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안다.
중년이 무척 궁금했던 터라
지지난해부터 순정파가 되기로 혼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