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발리송 - 정다운

마루안 2018. 8. 23. 23:55



발리송 - 정다운



지나간 것은 온전하지 않다
당신이 나를 뒤덮었던 깜깜한 점차 희붉어지듯
내 몸속엔 오직 더운 아침들
불어나는 살점이 있고 그 켜켜마다 무수한 알들이 살고 있다
지나간 것은 늙고 푸른 곰팡이처럼 들러붙어
알들이 곰팡이를 뜯어 먹고 자라난다
나는 알들을 기르기 위해 살고 있을 뿐
사람이 한 사람을 지나가면서 뿌리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다
알들은 쇳독처럼 오르고 짓질린 얼굴과 얼굴들이
나의 이마를 짚어 주면서 살아 내게 하지만
어떤 알들은 뜨거운 모루 위에서 그만
터지고 녹아 버린다 무엇을 죽였는지도
모르게 살고 있는, 출렁이는 몸통의 당신을 위해
당신의 기억 속엔 당신이 아는 나도 질서도 없다
그것은 한때 평화로웠던 지나간 것들일 뿐
내 알들을 쇠처럼 푸르게 담금질해도
당신의 배 속에 꽂아 비트는 것, 그것만이
당신이 알게 될 우리의 미래다 그때까지
곧 붉은 기억을 쏟으며 입 벌릴 당신을 생각하며
오늘 죽은 어린것의 이름까지도 긁어모아
더 크고 뾰족한 칼을 만든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웃어 대는 당신을 위로하면서.



*시집, 나는 그때 다 기다렸다, 천년의시작








맛기차콘 - 정다운



연탄 위에 턱턱


불량한 색깔 불량한 식품
정글짐에 올라 아무 오빠나 기다리던
불량한 날씨


아빠 없이 자란 친구가
아빠 있게 자란 나를
피아노 하나로 기죽이듯
내 이에 끼는 기분 누런 기분


육성회장 아들을 꼬집었다가
가방째 잡혀 들어오는 나를
백 원 줘서 내보내는 엄마
백 원이면 칼질 안 한 순대가 한 뼘
비닐에 싸 주는 순대는 통째로 흔들흔들


이런 이야기 너도 잘 아는 이야기
지질하지만 네 것과 비슷한 이야기
싼 맛에 단 맛에 어릴 때 먹어 본 그 맛에
그래서 그 기분을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


같은 동네에서 자란 것처럼
숟갈 두 개로 오렌지 맛 대롱대롱을 나눠 먹은 것처럼
쟤 딱지 다 따 모아서 마치 우리 둘이 나눠 가진 것처럼
우리는 이 중간의 동네에 꾸역꾸역 모여들어


불에 살짝 태워 찢어 먹은 게 진리
유년의 맛은 정말. 맛기차.






# 정다운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성신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문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5년 <문예중앙>으로 문단에 나왔다. <나는 그때 다 기다렸다>가 첫 시집이다.